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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 난민이 된다는 것과 난민... +1


    발라타 난민촌에 있는 공동묘지. 자연사한 사람과 함께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었습니다. 어떤 집의 경우는 세 아들이 한 곳에 묻혀 있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에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죽은 친구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발라타 난민촌에서 아부 무사브씨를 만났습니다.

    난민, 제가 국제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계속해서 들어왔던 말입니다. 오늘은 팔레스타인에서도 커다란 난민촌인 나블루스에 있는 발라타 난민촌을 찾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난민촌하면 텐트를 치고 살고 뭐 그럴 것 같지만 팔레스타인에 있는 난민촌들은 그런 형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난민이 된지 너무 오래 되었으니깐요.

    여기에는 크게 두 종류의 난민이 있습니다. 하나는 1948년 전쟁 전후로 해서 생긴 난민, 즉 시오니스트들이 이스라엘 건국을 본격화 하는 과정에서 생긴 난민이고, 다음은 1967년 전쟁에서 생긴 난민입니다. 그러니 이미 수 십 년 째 난민이 되어 2세와 3세가 태어난 상황이라 초기 상황과는 얼마만큼 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상황이 아주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구요.

    01 아부 무사브.JPG

    사진1 아부 무사브씨


    오늘은 1967년 전쟁에서 난민이 된 아부 무사브씨의 집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이 파르사바라고 부르지만 원래 우리 마을 이름은 쿠포르사발이에요. 1967년이니깐 11살이었어요. 우리 집은 토마토나 메론 같은 것을 키우는 농민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이스라엘 군의 탱크와 비행기가 몰려와서 공격을 했고, 우리는 세간 하나 챙기지 못하고 입고 있던 옷만 가지고 피난을 떠났죠. 처음엔 며칠 있으면 돌아올 수 있을 줄 알았어요.

    한국 전쟁 당시 피난을 떠났던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잠깐 떠났다 오면 될 거라고…….

    “우리 마을에 한 5천명쯤 살고 있었는데 정말 서로 가족 같았어요. 그런데 전쟁이 시작되고 모두들 피난을 떠났어요. 어떤 사람들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아이들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백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죠. 처음엔 깔낄리야로 갔었는데 이스라엘이 우물을 파괴하는 등의 짓을 저질러서 다시 이곳 나블루스로 왔죠. 그때 팔레스타인에 무슨 차가 있나요, 다 걸어서 피난을 떠났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48년 전쟁에 비하면 67년 전쟁에서는 사람이 적게 죽었다는 거죠. 나블루스로 오니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집도 음식도 모든 것이 부족했죠.”

    67년 전쟁은 이스라엘에게는 ‘혁명적 시기’였습니다. 48년 전쟁에서 다 쫓아내지 못한 팔레스타인인들을 다시 쫓아낼 수 있는.

    “처음 난민이 되고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 구제 사업국 - 미니 주)에서 텐트를 하나 제공했는데 한 텐트에서 10~12명씩 4년 동안 살았어요. 물을 길러 1km씩 멀리 가기도 하고,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 앞에서 오래 기다려야 하기도 했죠.”

    가슴 아플 줄 알면서 고향에 다시 간 적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76년과 84년에 고향에 갔었죠. 그 때는 일하러 노동자로 갔었죠. 고향에 가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 건물을 짓고 좋은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돈으로 저희 땅을 사겠다고도 했었지만 거절했어요. 그 뒤에도 큰 돈을 주겠다고 몇 번 제안 했었지만 모두 거절했어요. 언젠가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깐요. 지금도 고향땅 땅문서를 가지고 있어요.”

    02 공동묘지.JPG

    사진2 발라타 난민촌에 있는 공동묘지. 자연사한 사람과 함께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죽은 사람들이 묻혀 있었습니다. 어떤 집의 경우는 세 아들이 한 곳에 묻혀 있기도 했습니다. 사진 속에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죽은 친구의 무덤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아부 무사브씨는 수 십 년 째 난민으로 살고 있지만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큰 돈도 거절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UNRWA에 대한 불만도 말씀 하셨습니다.

    “UNRWA가 3개월마다 설탕 5kg, 기름 2병, 우유 1kg과 질이 아주 나쁜 쌀을 줍니다. UNRWA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위해 국제적으로 돈을 모으지만 그 돈을 다 어디에 쓰는지 모르겠어요. UNRWA가 운영하는 병원에 가 보면 늘 진통제 처방만 해요.”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나마 있는 UNRWA도 미국과 이스라엘이 계속 없애려 한답니다. 왜냐하면 UNRWA가 존재하는 한 팔레스타인에 난민이 있다는 것이 계속 알려지니깐 난민이 없는 것처럼 만들기 위해서라는 거죠.

    “너무 화가 나고 슬픕니다. 이스라엘이 매일 같이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하는 바람에 저는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요. 그리고 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도 목소리를 통해 구별하는 정도죠. 약값은 비싸고, 수술을 받고 싶어도 돈이 없으니 엄두를 못 내죠.”

    그러면 지금 생활은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저 하나였어요. 이것저것 팔러 다녔죠. 하지만 이스라엘이 여기저기를 봉쇄하는 바람에 그것도 할 수 없게 되었죠. 눈도 이러니…….지금은 개인들의 후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유럽등지에서 팔레스타인 정부로 돈을 보내지만 팔레스타인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돈을 쓰지는 않죠. 아랍 국가들도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아요.”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물어 봤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믿어요. 하지만 이스라엘은 평화를 믿지 않아요. TV에서 이스라엘은 늘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감옥과 같은 곳에서 일자리도 없이 이동할 수도 없이 살고 있어요. 그저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면서 집에 머물러 있는 거죠.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라 동물과 같아요.”

    늘 그랬습니다. 누구는 감옥이라고 말하고 누구는 동물원이라고 말하고…….

    03 무카타.JPG

    사진3 나블루스에 있던 팔레스타인 정부 청사 무카타. 2002년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 되었다.


    “가자 지구 철수만 해도 그래요. 이스라엘은 철수했다고 하지만 지금도 매일 같이 탱크와 아파치 헬기로 공격을 하고 있고, 점령민들은 가자 지구를 떠나 서안 지구로 옮겨 갔을 뿐이죠. 서안 지구에 있는 사람들은 가자 지구에 있는 가족들을 만날 수도 없어요. 여러분들은 제루살렘으로 갈 수 있지만 저는 제루살렘에 있는 병원으로도 갈 수 없어요.”

    이런 질문을 해도 되는지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삶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제 희망은 자식들이 모두 좋은 교육을 받고, 자신의 삶에 대해 이해했으면 하는 거에요.”

    교육, 한국의 부모님들도 상황이 어려울 때 자식들만이라도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 했었죠.

    “여러분들이 이렇게 팔레스타인으로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더 많은 압력을 넣고, 팔레스타인을 더 많이 지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같은 곳도 마찬가지구요. 우리는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셔서 팔레스타인의 진실을 더 많이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듣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다른 곳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인사를 한답시고 악수를 청했던 거죠. 그런데 아부 무사브씨는 제 손을 바라보지도 않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앞을 잘 못 보신다는 사실을 제가 깜빡했던 것입니다.

    결국 미안하고 당황스런 마음으로 인사말을 건네며 짧은 만남을 마쳤습니다. 아부 무사브씨의 집을 나서며 우리는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려달라던 말씀이 가슴에 깊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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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7 04:35:53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한다...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


    깔낄리야의 장벽 앞에서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서북쪽에 보면 깔낄리야라는 곳이 있습니다. 인구 4만5천 명 정도 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습니다. 적어도 장벽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01 마을주변 장벽.JPG

    사진1 도시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장벽. 장벽 너머도 예전에는 깔낄리야였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 땅이지만.


    2003년 이스라엘은 주민들의 땅을 빼앗으며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장벽을 완성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오직 한 곳의 통로만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사진이나 지도를 보면 도시가 호리병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벽이 생기기 전에 깔낄리야는 서안지구의 식량 바구니라고 불렸을 정도로 농업이 활성화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스라엘이 농산물 유통마저 가로 막아서 농민들이 찻길에 나와 헐값에 농산물을 넘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02 장벽.JPG

    사진2 이스라엘 군의 총격 때문에 주민들은 가까이 가는 것도 두려워하는 장벽


    이스라엘이 장벽을 쌓는 것은 역사적 과정입니다. 이스라엘 건국을 위해 1948년 전쟁을 일으켜 수십만의 사람을 내쫓고, 이어 67년 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고 땅을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죽이거나 내쫓을 수는 없었던지 그 다음 찾아낸 방법이 점령촌입니다. 가자 지구와 서안 지구에서 계속해서 땅을 몰수하면서 이스라엘인들의 주거지를 확대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생각해 낸 방법이 장벽입니다. 어차피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을 내쫓을 수 없다면 계속해서 땅을 몰수하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차단, 고립 시키는 방법으로 만들어낸 것이 장벽입니다.

    크게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 장벽 2가지로 공사를 진행 중인데, 공사가 끝나고 나면 전체 팔레스타인 땅의 11%만을 팔레스타인인들이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그나마도 서안 지구는 3~4개로 찢어지고, 서안 지구와 가지 지구는 서로 소통할 수 없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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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3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차나 한 잔하고 가라던 깔낄리야의 농민


    장벽의 모습이며 장벽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사진으로 찍고 있는데 주변에서 일하던 한 사람이 저희에게 차나 한잔 하고 가라고 하셨습니다.

    “장벽 너머에 제 땅의 50%가 있고 이 쪽 편에 50%가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장벽 너머 땅으로 일을 하러 갈 수는 없죠. 처음 장벽이 들어섰을 때는 여기서도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사격을 해 대서요. 그나마 지금은 하루에 몇 시간씩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큰 돈을 들여 새로 작물을 심었는데 하루 밤에 군인들이 와서 모두 파괴해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농민의 형은 이스라엘 군인에게 살해당했고, 조카는 감옥에 있고, 자신의 땅의 절반은 빼앗긴 채 그나마 남아 있는 땅에서도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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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4 존재한다는 것은 저항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콘크리트 호리병 속에 갇힌 깔낄리야를 둘러보고 우리는 다시 라말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체크 포인트를 4번 통과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체크 포인트를 모두 5번 통과하고 1번 통과하지 못한 날입니다.

    아침에 제이유스에 있는 쉐리프 오마르씨의 밭에 가기 위해 장벽 사이에 있는 체크 포인트를 통과하려고 했지만 이스라엘 군이 거부했습니다. 물론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단지 안 된다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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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5. 이동식 체크 포인트의 모습. 수시로 벌어지는 체크 포인트와 검문, 팔레스타인 마을에 대한 수색과 체포. 팔레스타인 수배자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습니다.


    제이유스에서 깔낄리야로 오는데 첫 체크 포인트를 만나 40분을 기다렸습니다. 이동식 체크 포인트(flying checkpoint)였기 때문에 언제 생겼다, 언제 없어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체크 포인트를 만날 때마다 우리는 기다려야 하고 신분증을 내보여야 했습니다. 말 그대로 팔레스타인 안에는 수 백 개의 국경이 여기도 생겼다, 저기도 생겼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단, 노란색 번호판을 단 이스라엘 차량은 초록색 번호판을 단 팔레스타인 차량이 아무리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어도 옆으로 쉬익 빠르게 지나갑니다. 노란색과 초록색의 차이는 그만큼 큰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질 급하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팔레스타인에 오시지 마시든지 아니면 오셔서 아무 이유 없이 무작정 기다리는 것에 적응하시든지 하시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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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7 04:20:58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 “이런 것이 삶이에요.”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제닌에서의 하루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가운데도 가장 위쪽에 있는 도시 제닌을 찾았습니다. 2002년에 있었던 제닌 학살과 ‘아나의 아이들’이라는 영화 등을 통해 제닌은 저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01 가산.JPG

    사진1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며칠 전에 이스라엘 군이 와서 파괴 했습니다. 두 사람이 죽었죠. 이스라엘은 그들이 이슬람 지하드 소속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 곳은 빵집이었습니다. 사건이 있고 다음 날 여기서 100m 떨어진 곳에서 머리 하나와 팔 하나를 찾았습니다. 지금도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 보는 저였지만 잘려 나간 머리 사진을 보자고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돌려 보니 며칠 전 헤브론에서 본 알 자지라 뉴스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뉴스의 현장(?)을 떠나 우리는 2002년에 파괴된 제닌의 무카타(팔레스타인 정부)를 찾았습니다.

    02 무카타.gif

    사진2 완전히 파괴된 무카타(왼쪽). 건물 잔해 곳곳에 꽂혀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오른쪽)


    제닌의 무카타는 2002년 공격 당시 1,000여명이 근무를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도시에서 무카타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미리 피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년 세월이 지난 지금 파괴된 무카타 주변에서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부서진 무카타를 뒤로 하고 다음 찾은 곳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던 넓은 들판과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여러 날 계속 되는 여행으로 몸도 약간 피곤했지만 매일 같이 죽음과 파괴의 모습을 보다보니 마음도 약간 피곤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03 들판.JPG

    사진3 이곳이 점령지가 아니라 농민과 자연이 건강하게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비록 이곳이 고난의 땅일지라도 맑은 자연은 저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농민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며 닭이며 낯선 이를 보고 짖어대는 개들이 한국의 농가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낯선 저희를 친절히 맞아 주었고, 차와 과자를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점령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우물을 파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에다 허가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이곳에는 물이 큰 문제에요.”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농민들에게 물은 없어서도 부족해도 큰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탐욕은 평생 농사를 짓느라 제닌 밖으로 나간 본 적이 없다는 농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04 농민들.JPG

    사진4 가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함께 간 셀림은 농민이신 한국의 부모님을 떠올렸습니다.


    농가를 나와 우리는 하룻밤을 머물기 위해 가산의 집으로 갔습니다. 차와 커피, 과일, 과자가 계속 나오고 가산의 부인은 우리를 위해서 피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TV도 보고 이것저것 먹으며 놀다가 가산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때려 부수죠.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늘 새로 짓구요. 이런 것이 삶이에요.”

    누군가는 늘 부수고, 누군가는 늘 새로 짓는 팔레스타인. 왠지 마음 뭉클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의 실상을 다음날 제닌 난민촌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무카타와 함께 2002년에 제민 난민촌은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수 십 명이 죽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집들이 새로 지어져 있습니다. 2002년의 파괴와 살인의 흔적은 당시에 부서지지 않고 남아 총탄 자국을 안고 있는 집들이었습니다.

    05-새-건물과-벽화.gif

    사진5 2002년 파괴 이후 해외 원조로 새로 지어진 집들(왼쪽). 제닌 난민촌에 있던 벽화(오른쪽).


    이런 것이 삶인 걸까요? 그 큰 죽음과 파괴 속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 뛰어 놀고, 부서진 자리에 새로운 집들은 들어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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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7 04:04:44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


    나블루스로 온 첫 날

    오늘(1월18일)은 라말라에서 나블루스로 왔습니다. 나블루스로 오는 동안 3개의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통과했고, 칼리드의 얘기에 따르면 이건 단지 늘 있는 체크 포인트일 뿐 언제든지 임시 체크 포인트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나블루스로 오는 길에 또 많은 점령촌을 보았습니다.

    “칼리드, 대부분 점령촌 집들의 모양이나 색깔이 비슷한 것 같아요.”
    “맞아요. 왜냐하면 정부에서 디자인해서 제공하는 집들이니깐요.”
    “그리고 대부분 언덕이나 산 위에 있는 것 같아요. 팔레스타인인들을 감시하려고 그러는 건가요?”
    “맞아요. 위에서 아래를 보며 감시하고 통제하려고 다 산 위에 있는 거에요.”

    이런 얘기를 나누며 체크 포인트를 지나기 위해 길게 늘어선 팔레스타인인들의 차량과 사람 행렬을 뒤로 하고 나블루스로 들어왔습니다. 어제도 이스라엘 군이 마을을 덮쳐서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얘기를 들으며…….

    옴 이하브 이야기

    2004년 7월24일 밤, 나블루스 올드시티에 살고 있던 옴 이하브의 남편과 두 아들은 베란다에서 밥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옴 이하브가 베란다로 나가보니 남편은 머리에 부상을 입었고, 작은 아들 바하브는 눈에 부상을 입었고, 큰 아들 이하브는 얼굴 반쪽이 부서진 채 죽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하브의 살점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습니다.

    사진 1 옴 이하브가 사건 현장에서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01옴이하브(나블루스).JPG

    옴 이하브는 소리쳤습니다. 제발 도와 달라고, 누가 좀 도와 달라고…….

    하지만 어떤 이웃도 그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길에는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득했기 때문에 모두 두려워서 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옴 이하브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애원했습니다. 제발 치료를 받게 해 달라고……. 하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은 치료를 거절했고, 1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마을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사진 2 왼쪽이 큰 아들 이하브, 오른쪽이 작은 아들 바하브

    02왼쪽이하브오른쪽바하브.gif

    당시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한쪽 눈을 잃은 바하브는 자신들이 공격 받을 줄 몰랐다고 했습니다. 현장에 가 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바하브의 집은 2층이어서 길에 있던 군인들이 사격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군은 공격을 했습니다. 그들이 개발한 신형 무기를 가지고.

    사진 3 이스라엘 군의 공격으로 한쪽 눈을 잃은 바하브

    03눈부상바하브.gif

    “우리를 공격할 줄 몰랐습니다. 무기를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었으니깐요. 그때 부상을 입은 이후로 냄새를 맡는 데도 문제가 생겼고, 숨 쉴 때도 어려움을 느낍니다.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서 더 좋은 치료를 받고 싶습니다.”

    마날과 가족들 이야기

    이하브 가족들과의 만남 뒤에 우리는 다른 피해자 가족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2002년 4월 서안지구 전역을 휩쓸었던 대규모 군사 공격 때 일어났던 일을 마날이 얘기해 주었습니다.

    “2002년 4월7일, 이스라엘 군이 우리 마을을 공격했어요. 탱크가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해 사격을 했어요. 그 때 아버지와 언니는 마당에 있었는데 탱크 사격으로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가슴에 부상을 입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어머니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고, 주변 이웃과 친척들이 와서 언니를 응급 치료 했어요.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가 없어서 3일 뒤에야 의사가 집으로 와서 수술을 했어요.”
    “집에서요?”
    “어쩔 수 없었어요. 이스라엘이 계속 통행금지 명령을 내렸으니까요.”
    “아버지는요......”
    “아버지 시신을 다른 곳에 묻을 수가 없어서 일단 집 마당에 묻었다가 6개월 뒤에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었어요.”

    사진 4 마날(왼쪽)과 조카

    04마날.gif

    옆에 있던 아홉 살 난 무함메드와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걸 본 적 있니?”
    “네.”
    “언제?”
    “이스라엘 군이 집으로 와서 가족들을 한방에 몰아넣은 적이 있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니?”
    “무서웠어요.”

    열 두 살 난 사메헤에게도 물었습니다.

    “학생이니?”
    “네, 6학년이에요.”
    “어떤 과목 좋아해?”
    “아랍어요.”
    “꿈이 뭐니?”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거요.”
    “만약에 지금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 군인이라면 어떤 얘기를 하고 싶니?”
    “우리 땅에서 떠나라. 여긴 우리 땅이다라구요.”

    사진 5 나블루스 올드시티에서는 이스라엘 군에게 살해당하거나 싸우다가 죽은 사람들의 포스터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습니다. 주로 인티파다 과정에서 사망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05포스터.JPG

    결혼해서 지금은 요르단 암만에 살고 있는 마날의 언니 리마와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팔레스타인으로 올 때 별 어려움은 없었나요?”
    “국경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몇 시간씩 우리를 버스에 태워 놓고 있어요.”
    “왜요?”
    “몰라요.”

    ‘왜요’와 ‘몰라요’ 저는 끊임없이 왜 그런지를 물어대고 사람들은 아무도 이유를 모릅니다. 단지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 밖에는.

    “67년 전쟁을 기억하시나요?”
    “아니요. 그 때는 2살이었거든요.”
    “얼마에 한번씩 팔레스타인으로 오시나요?”
    “3년에 한 번 쯤요.”
    “꿈이 있으시다면요.”
    “팔레스타인에 왔을 때 체크 포인트를 안 봤으면 좋겠어요.”

    마날의 얘기가 이어집니다.

    “임산부가 병원으로 가려고 하는데 체크 포인트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이 통과를 못하게 해서 사람들이 죽는 경우도 많이 생깁니다. 저는 ‘평화’ 같은 것이 아니라 인티파다로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뿐만 아니라 서안지구에서도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몇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 평화가 아니라 평화 협상을 한다고 하면서도 상황을 더욱 악화 시키는 그런 의미의 ‘평화’였습니다. 오늘 ‘평화협상’을 하고 내일 다시 폭격을 해 대는 그런 평화.

    마지막으로 마날의 인사와 당부가 이어졌습니다.

    “여러분들이 팔레스타인을 찾아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시면 이스라엘이 만든 것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진짜 상황을 한국 사람들에게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꼭 말해 주세요. 이스라엘이 테러리스트이지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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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1 02:14:35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 저항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오랜만에 자카리아를 만난 날

    자카리아는 한국에도 2번 왔었던 사람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글을 쓰고 있구요. 오늘은 자카리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행 중에 환자가 생겼습니다. 미연이가 어제부터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더니 얼굴 한쪽에 염증이 생겼는지 아파서 잠을 잘 못 잤다고 합니다. 다행히 자카리아가 아는 치과 의사가 있어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자카리아와 셀림과 미연이가 엑스레이를 찍어간 사이 저만 치과에 남아서 의사인 아메르와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치아 건강 문제가 많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차를 마실 때 설탕을 많이 먹으니깐요.”
    “음...... 차에는 오히려 불소가 들어 있구요,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돈이 없다는 거에요.”

    순간 질병 발생의 원인 가운데 큰 부분이 사회 제도와 계급 등의 문제라는 것을 먼저 떠올리지 못했던 제 머리가 쿵!

    생각을 바꿔라

    오늘 자카리아를 만나들은 얘기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공격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생각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의 집을 폭파 시킵니다.”
    “왜 이스라엘이 집들을 파괴 하나요?”
    “첫째 이유는 총이나 활동가들을 찾는다는 것도 있구요, 다른 이유는 생각을 바꾸라는 겁니다.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거죠. 더 이상 희망은 없고, 우리에게 대항해 봐야 피해만 볼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죠.”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례에서도 늘 들어왔던 얘기입니다. 공포를 줌으로써 상대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려 시도한다는 것.

    “이스라엘이 올리브 나무를 계속 베어내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점령촌 사이를 잇기 위한 도로를 만들려고 그러는 거구요, 또 하나는 군사용으로 가시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베어내는 경우도 있구요, 다른 하나는 만약 누군가 돌을 던지거나 총을 쏘거나 했다면 보복 차원에서 그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올리브, 이곳에 오면 참 익숙한 나무입니다. 어딜 가나 올리브 나무가 있고 올리브 기름에, 올리브 비누, 올리브 짱아찌도 있으니까요.

    사진 1 자카리아

    01자카리아.JPG

    “라말라는 다른 도시에 비하면 그나마 상황이 좋은 편입니다. 그래서 최근 5년 동안 인구가 2배로 늘어났습니다. 제닌이나 나블루스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왜요?”
    “인티파다가 시작되기 전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아침에 라말라로 와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그랬는데, 인티파다가 시작된 이후에는 이스라엘의 봉쇄가 심해져서 그럴 수가 없게 된 거에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예 라말라로 일을 하러 오고 주말에나 집으로 가는 거죠.”

    거리가 멀어서가 아니라 점령과 봉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이 이주를 해야 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이어서 곧 총선이 있을 거라서 선거를 얘기를 꺼내 봤습니다.

    “하마스에 대한 지지가 커지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점령 때문입니다. 지난번 96년 선거에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파타를 크게 지지 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고 상황은 오히려 나빠졌습니다. 그러니깐 사람들이 자연히 다른 대안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하마스가 대안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하마스가 대안인 것이 아니라 지금 사람들에겐 별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마스가 팔레스타인 의회를 주도하게 될 경우 여성 문제에 대해 우려를 하던데요.”
    “맞아요, 우리의 자유가 제약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가지와 싸워야 합니다. 하나는 점령과 싸워야 하고, 다른 하나는 보수주의와 싸워야 합니다.”
    “파타나 PLO의 부패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번 선거에서 그게 큰 쟁점인데요, 하마스 같은 경우도 깨끗한 손을 뽑으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의 핵심 문제는 부패냐 깨끗한 손이냐 보다 이스라엘의 점령입니다. 깨끗한 손을 얘기하면서 점령은 빠져 있습니다.”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하하하. 아직 확실히 정하지는 않았는데요, 제 아내의 경우는 인민전선(PFLP, 팔레스타인해방 인민전선-미니 주)을 지지하는 것 같구요. 저는 아직 확실하진 않은데 좌파 정당 아니면 중도 좌파 정도 될 것 같습니다. 어쨌든 종교 정당이 아닌 세속 정당을 지지합니다.”

    한 인간이 겪은 전쟁과 점령 이야기

    “1967년 전쟁이요? 뭐 생각하고 말 것도 없습니다. 그냥 갑자기 점령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기 전에는 요르단 영토였는데, 전쟁이 벌어지고 요르단은 아무런 힘이 없었고, 이스라엘은 아주 쉽게 점령 했습니다.”

    지난번 헤브론의 시장에서 만났던 나이 많았던 그 분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다. 아랍군은 싸우지도 않고 그냥 도망갔었다고.

    “저는 1969년도에 공부를 하러 이라크로 떠났었습니다. 그리고 25년이 지나서야 고향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왜요?”
    “이스라엘이 만든 규정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2년 동안 외국에 갔다 오겠다고 하면 정확히 2년이어야 합니다. 제 말은 1달 뒤에 돌아오는 것도 안 되구요, 정확히 2년 째 되는 날이 아니라 하루라도 지나서 오는 것도 안 됩니다. 정확히 2년째 되는 날 국경에 도착하지 못하면 시민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겁니다. 제가 그 경우인데요, 이라크에서 몇 년 있다가 돌아오려고 하니깐 돈이 없어서 좀 늦게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깐 이스라엘이 입국을 거부했고, 결국 고향을 떠난 지 25년이 지난 뒤에야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전이든 이후든 단 하루도 다르지 않고 정확하게 돌아와야 된다...... 어떻게든 팔레스타인을 떠나라는 말로 밖에는 안 들립니다.

    사진 2 자카리아의 집에서 저 멀리 언덕 위에 이스라엘 점령촌이 보입니다.

    02점령촌.JPG

    “25년이 지난 뒤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모든 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점령촌이 들어서 있었고, 예전에 농부이던 사람들이 노동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왜요?”
    “농사를 지어서는 생활을 할 수가 없으니 주변에 있는 이스라엘의 공장으로 일을 하러 가게 된 겁니다. 농민과 농업 문화가 중심이었는데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어릴 때 행복하게 같이 놀던 친구들조차도 알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는 빠지고 볼은 푹 들어가 있었습니다. 점령 기간 동안 너무 늙어버렸던 겁니다. 저는 제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을 잃어 버렸습니다. 제 친구들과 함께요.”

    점령은 인간의 사고와 생활, 노동 과정까지 뒤바꾼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제가 25년 만에 고향에 돌아 왔을 때 어머니는 너무 나이가 많이 되셔서 절 알아보시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도 잃어버린 거죠.”

    25년 동안 어머니는 아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 하셨을까? 하지만 정작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도 알아보지 못하셨다. 지금 하늘나라에서 아들을 보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1980년대 초 제가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을 때 일입니다. 그 때 이스라엘이 베이루트를 공격했었는데요, 폭탄을 엄청 퍼부었습니다. 공중에서 지상에서 바다에서요. 당시 PLO가 베이루트에 있었고 저는 기자였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지하로 들어가서 손을 머리 뒤로 감싸고 웅크려 있는 것 밖에는요. 폭격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 보니 모든 것이 파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다행” 그래, 자카리아는 다행히 살아남았습니다. 다행히도 살아남아서 우리에게 그 때의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라파트가 있다고 생각되는 건물은 모두 폭파 했는데요, 한번은 아라파트를 죽인다고 건물을 폭파해서 350명이 죽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한번은 국제 사회에서 군대가 파견되어 도시 주변에 배치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들이 떠나고, 이스라엘은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베이루트에 대한 공격으로 몇 만 명이 죽었는지 아직도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또 이스라엘과 레바논 우파 민병대는 샤브라, 샤틸라 난민촌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수 천 명을 학살 했습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은 베이루트의 학살에 대한 “간접적” 책임을 지고 국방장관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스라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을 점령하고 점령촌을 건설하고 있죠?”
    “시리아 땅인 골란고원을 지금도 점령하고 있는데요, 쉽게 얘기해서 이스라엘에겐 국경이 없습니다. 탱크가 가는 곳이 곧 국경입니다.”

    탱크가 가는 곳이 국경이라, 저는 이보다 더 정확히 이스라엘의 팽창 정책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을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점령이 어린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이들이 아니에요. 어린 시절을 잃어버린 거에요. 예를 들어 아내가 유치원 교사로 있을 때 일입니다. 남자 아이가 하나가 여자 아이 옷을 입고 왔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하도 이상해서 왜 여자 아이 옷을 입고 왔냐고 물으니깐, 이스라엘 군인들이 남자 아이들을 죽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답니다.”

    지금 이 얘기를 다시 기억하며 쓰는 순간에도 가슴이 막히고 눈물이 나오려고 합니다.

    “1차 인티파다 때 일입니다. 라빈이 이스라엘 총리였구요. 이스라엘 정부가 공식적으로 돌을 던지는 아이들 팔을 부러뜨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팔과 다리를 붙잡고는 돌과 총으로 부러뜨렸죠.”
    “아니 도대체 왜 팔을 부러뜨리는 겁니까?”
    “돌을 던지니깐 못 던지게 하려는 거겠죠.”

    우리가 수없이 봐 왔던 사진입니다. 이스라엘 탱크를 향해 돌을 던지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돌은 던진다고 팔을 부러뜨리다니…….

    한 인간에게서 한 집단의 역사를 듣고 나서 마지막으로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만약에 해외에 있는 난민들이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는데, 고향에서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으면 어떻게 하죠?”
    “그건 제가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다만 지금 우리는 언젠가 돌아올 난민들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는 것에 대해서 얘기할 뿐이죠.”

    지금 생각하면 제가 봐도 아주 멍청한 질문이었습니다.

    자카리아와 만남을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주 커다란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제가 태어나서 본 가장 크고 예쁜 무지개였습니다. 그리고 자카리아가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떠올렸습니다.

    “우리에게 상황은 아주 불리합니다. 그리고 빛은 아주 가느다랗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저항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진 3 무지개

    03무지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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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1 01:57:13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남편이 출감한 1주일 뒤 다...


    한 집안이 겪은 점령 이야기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감옥에 갔다 왔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깐 아미니 가족들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리고 라에드가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줘서 쉐켈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쉐켈을 비롯해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줬습니다.

    쉐켈 이야기

    아부 디스 대학 학생인 쉐켈은 2003년과 2005년 두 번 감옥에 끌려갔었습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황당한 일 가운데 하나가 법적 절차 없이 행정 처분만으로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인데 쉐켈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쉐켈을 가두면서 이스라엘이 내세웠던 명분은 이슬람주의 활동가라는 것입니다.

    먼저 쉐켈에게 고문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물리적 압박이 심합니다. 발로 차고 욕을 하기도 하구요, 얼굴에 천을 뒤집어 씌워 놓기도 하고 잠을 안 재우기도 합니다. 환자가 생겨도 치료나 의약품을 제공을 하지 않구요. 저도 감옥에 들어갈 때 머리에 상처가 있었는데 의사를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쉐켈

    “아침 5시에 기상을 하고 운동을 잠깐 합니다. 그런데 밥 먹는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 마음대로 주고 싶을 때 줍니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런 일이 있었는데요, 이스라엘 군인들이 일부러 9시에 밥을 가져오는 거에요.”

    무슬림들은 라마단 기간에는 해가 뜨기 전에 밥을 먹고 낮에는 단식을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군인들이 먹지 않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그렇게 했던 거죠.

    “그리고 하루 세 번 수감자들 인원 파악을 합니다. 모두 밖으로 불러내서 숫자를 세죠. 비가 오거나 날이 추워도 계속해서 그렇게 합니다. 감옥의 상황은 그야말로 비인간적입니다. 12명이 생활 가능한 공간에 22~25명을 넣어 둬서 잠을 잘 때 바로 누울 수 없어서 옆으로 누워서 잠을 잡니다.”

    감옥에서 나온 이후 어려움은 없는지 물어 봤습니다.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지날 때마다 서류 검사를 위해 적어도 2시간씩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통고를 해서 조사할 게 있다고 오라고 합니다.”

    쉐켈이 친척들 이야기도 들려 줬습니다.

    “삼촌의 경우는 이스라엘이 3개월마다 3개월씩 구속 기간을 연장해서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구요, 부인의 면회도 금지했습니다. 처음에 잡혀갔을 때는 10일 동안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지금 친척들 가운데 모두 20명이 감옥에 있습니다. 때로는 단지 친척이라는 이유로 체포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체포될 때 다른 사람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체포하려고할 때는 어떤 조직이나 변호사도 막을 수없습니다. 심지어는 체포되고 난 뒤에 왜 우리를 체포했냐고 물으면 이스라엘 군인들은 비밀이라고 합니다.”

    아부 마아문 이야기

    1981년부터 교사로 생활하고 있는 아부 마아문(마아문의 아버지라는 뜻)은 2번 감옥에 갔었다. 하마스와 관련 있다는 이유였고 아무런 법적 절차도 없이 체포되었다.

    “수갑을 계속 채워 놓기도 하고 더러운 천을 얼굴에 씌워 놓기도 했습니다. 3일 동안 잠을 안 재우기도 했구요. 2번째 체포되었을 때는 선거에 출마한 상태였습니다.”

    3일 동안 잠 안 재우기, 한국에서도 벌어졌었던 일이다.

    “형제들 가운데 4명과 사촌들 가운데 4명 그리고 여동생의 남편과 제 아내의 형제 한명도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제 아들은 2005년 9월에 체포되어서 지금 감옥에 있구요.”

    이런 경우를 우리는 풍지박산이라고 하는 걸까?

    아부 마아문

    “이틀 전에 제 딸 타쿠아가 오빠 면회를 갔다 왔습니다. 새벽 4시에 집을 나서서 다음날 새벽 1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 왔습니다. 감옥이 여기서 1시간 거리인데도 말입니다. 면회는 45분 동안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와 아내는 아들 면회를 갈 수 없습니다.”

    타쿠아에게 오빠를 만났을 때 기분이 어땠냐구 물었습니다.

    “매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아부 마아문에게 아들과 연락을 할 수는 있냐고 물었습니다.

    “전화를 할 수는 없구요, 편지를 보내면 몇 달씩 걸립니다. 그나마 타쿠아와 같은 어린 애들은 면회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수감자 가족들이 5살짜리 꼬마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하게 하기도 합니다. 누구든 어떤 조직이든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도와주면 좋겠습니다. 16세 이하의 수감자들도 있는 상황입니다.”

    수감자 가족들의 상황도 얘기해 주었습니다.

    “제 한 남동생은 애들이 10명이 됩니다. 다른 동생은 8명이구요. 일부 자선 기관이나 이웃과 친척들이 도와주기는 하지만 생활이 너무 어렵습니다.”

    아내인 유스라에게 심정을 물었습니다.

    “아들이 잡혀갔을 때 많이 슬펐습니다. 어느 어머니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들은 대학 4학년이었는데 남편이 감옥에서 나온 1주일 뒤 아들이 감옥에 갔습니다.”

    옆에 있던 딸 유다(14세)에게 물었습니다.

    “오빠를 지금 만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요?”
    “오빠를 만나면 아주 기쁠 거에요.”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들은 독재자에요. 이 땅에서 떠났으면 좋겠어요.”

    옴 아흐마드 이야기

    옴 아흐마드는 아흐마드의 어머니라는 뜻입니다.

    “아들이 요르단에서 오다가 국경에서 체포 되었습니다. 학생 활동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옴 아흐마드는 아들 얘기를 하다가 자신들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는 얘기를 덧붙였습니다.

    옴 아흐마드

    “그나마 우리 상황은 나은 편입니다. 어떤 경우는 30년, 40년씩 감옥에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망한 뒤에 형량만큼 시신을 감옥에 두는 경우도 있구요. 어떤 때는 이스라엘이 형량을 2천년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형량을 채우라고 시신을 감옥에 두다니......

    “이스라엘은 아들이 하마스와 관련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외부에서 와서 우리 아들을 체포하였습니다. 도저히 받아들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옆에 있던 딸 메리안(7세)에게 심정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가끔 오빠를 보러갑니다. 많이 슬퍼요.”

    아들 야세르(11세)에게도 질문을 던졌더니 엄마를 쳐다보며 아주 쑥스럽게 대답을 합니다.

    “지금 형에게 하고 싶은 얘기 있어요?”
    “없어요.”
    “이스라엘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요?”
    “지옥에나 가라고 하세요.”

    쉐켈과 그의 집안사람들

    이렇게 해서 20명이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집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전에 별 약속 없이 쉐켈과 함께 그냥 방문 했는데도 모두 친절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고, 한 분 한 분 차근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다시 숙소인 아마니 집으로 돌아오니 아마니 아버지가 어땠냐고 물었습니다.

    “어... 어... 어...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했어요. 다들 슬픈 얘기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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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20 12:58:27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생활 곳곳에 스며든 점령



    헤브론에서 둘째 날 아부 아흐메드와 함께 헤브론 시내 구경(?)을 나섰습니다. 세르비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스라엘의 점령입니다.

    헤브론 안에는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올드 시티라는 지역이 있는데 지금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땅을 빼앗아 생긴 이스라엘 점령촌이 들어서 있습니다.

    올드 시티에서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통해 나오는 것은 쉽지만 들어가는 데는 올드 시티에 거주하고 있다는 신분 증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아부 아흐메드는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헤브론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이 생기게 된 원인이 바로 점령입니다.

    헤브론에 있는 올드 시티로 들어가는 체크 포인트


    그런데 헤브론 시내를 다니면서 앞의 제 얘기는 점령의 일부분에 불과 하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습니다.

    헤브론에는 ‘헤브론1’과 ‘헤브론2’가 있는데 헤브론1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보안 문제를 뺀 80% 정도를 통제하고 있고, 헤브론2는 이스라엘이 100% 통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경찰은 정복을 입은 채로는 헤브론2쪽으로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심지어 선거 구호에도 “헤브론의 통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합니다. 시내 큰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헤브론이 두 쪽으로 갈려져 있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우리는 먼저 헤브론2쪽에 있는 시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여느 시장처럼 북적대고 활기차 보였습니다. 그런데 몇 걸음 걷다보니 앞의 길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사람들도 거의 없는 길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아부 아흐메드가 설명을 해 줬습니다.

    “보세요. 1층에는 팔레스타인들의 상점이 있고, 2층에는 이스라엘 점령민들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돌이나 더러운 물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니깐 장사를 할 수 없는 거죠.”

    한 길의 두 풍경. 시장 입구에 이스라엘이 차가 들어가지 못 하도록 큰 돌을 가져다 놨습니다.

    아래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위에는 이스라엘 점령민들이 집과 건물을 빼앗아 살고 있습니다.
    위에서 자꾸 무언가를 던져서 사람들이 그물과 철망을 쳐놨습니다.


    문을 연 가게에 들어가서 물어봐도 점령촌이 생기기 이전에는 정말 장사가 잘 됐는데 지금은 거의 장사를 할 수 없다며 저희에게 자신의 말을 믿어달라고 했습니다. 또 어떤 가게는 윗집 점령민들이 물을 부어대는데 천장에서 물이 계속 새서 말을 해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가게 바닥에 통을 몇 개 가져다 놓고 떨어지는 물을 받고 있었습니다.

    점령촌의 풍경을 보기 위해 동네 아이들의 안내를 받아 한 집의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사진도 몇 장 찍고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있는데 뒤편에서 고함 소리가 들렸습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건너 집 지붕에 이스라엘 군 초소가 있었고 군인이 우리들에게 내려가라고 소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제 집 지붕에도 마음대로 서 있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2백년, 3백년씩 된 집들이 늘어서서 그야 말로 올드 시티인데 그 곳의 삶은 한숨 가득한 풍경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아부 아흐메드가 우리에게 이슬람 성원을 보여주겠다고 아브라함 모스크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성원 입구에서부터 우리는 여러 가지를 겪어야 했습니다. 또 다시 두개의 회전문을 지나야 했고, 우리는 무슬림이 아니기 때문에 성원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을 뿐더러 팔레스타인인들은 성원 입구에서 짐과 몸 수색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 모스크(왼쪽)와 검색대를 통과하기 위해 늘어선 사람들(오른쪽)

    이스라엘 군인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의 몸 수색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꼬비라는 이름을 가진 한 이스라엘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몸 수색을 하나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칼을 가지고 모스크에 들어갈 수도 있으니깐요.”

    어쨌거나 우리는 이슬람 성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아부 아흐메드가 기도를 마치고 나오기까지 기다렸습니다.

    사람들이 나와서 큰 길이 아니라 회전문이 있는 쪽을 통과해서 지나려고 하니깐 이스라엘 군인들이 나이든 사람이나 어린 사람은 빼고 젊은 사람들은 다른 쪽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또 군인에게 물었습니다.

    “왜 저 사람들은 이쪽을 지나갈 수 없죠?”
    “길이 좁아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릴까봐 그러는 거에요. 물론 여러분들은 원하면 지나갈 수 있어요.”

    지나가는 이스라엘 여성들을 가리키며 저에게 ‘예쁘지?’하던 이스라엘 군인들은 그렇다 치고 이스라엘 정부가 막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칼을 가지고 성원으로 들어가는 팔레스타인 청년들? 아니면 좁은 길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생길 수 있는 사고?

    헤브론에서의 둘째 날, 거리 곳곳 생활 곳곳에 스며든 점령의 풍경을 지켜보며 거리에서 만난 아이들의 웃음에서 위안을 얻습니다.

    공원에서 만난 아예드와 예스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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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17 10:25:28
  • 현지에서 [미니,세계를 날다] 가슴이 막혀서 눈물이 나던...


    차가운 현실과 따뜻한 사람들

    팔레스타인에 온지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고 있는 아마니와 그의 동생 라에드와 함께 헤브론으로 가기 위해 라말라에서 세르비스 택시를 탔습니다. 세르비스(service) 택시는 합승 택시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대부분 정원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정 구간을 오가는 노란색 자동차입니다.

    헤브론까지 차를 타고 가면서 많은 얘기를 듣고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았습니다. 여러 번……. 아마니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여러 번…….

    아마니는 평생 2번, 라에드는 1번 예루살렘에 가 봤다고 합니다. 거리가 멀어서거나 차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팔레스타인인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으로 예루살렘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예루살렘 방문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예루살렘 안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을 어떻게든 쫓아내려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습니다.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왼쪽)와 콘테이너 체크 포인트(오른쪽)

    차를 타고 한참 뒤에 우리는 콘테이너 체크 포인트(검문소)에 닿았습니다.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에 비하면 작은 규모입니다. 하지만 이 체크 포인트가 서안지구의 남북을 가르기 때문에 중요한 곳이라고 합니다.

    라에드가 설명하기를 이 체크 포인트는 택시와 같은 차량이 아닌 개인 차량은 지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연히 전 왜 그러냐고 물었고, 또 당연한 대답이 돌아 왔습니다.

    “몰라요”

    체크 포인트가 닫힌다거나, 누구는 통과하고 누구는 통과하지 못하는 사건이 계속 벌어지고 있는데 이유는 다들 잘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가 달리는 동안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갑자기 울퉁불퉁하고 낡은 도로가 나오면 거긴 분명히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할의 도로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거꾸로 얘기하면 서안지구 안에서도 이스라엘인들이 이용하는 도로는 잘 닦여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도로는 관리가 제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도로에서부터 차별이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또 다른 차별의 상징 신분증. 초록색은 팔레스타인, 파란색은 이스라엘인을 의미합니다.

    꼬불꼬불 길을 달리면서 라에드가 또 하나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음에 여러분들끼리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갈 때는 다른 길로 가세요. 그러면 금방 도착할 수 있을 거에요.”
    “왜요?”
    “우리는 그 길을 사용할 수 없어서 먼 길을 돌아가지만 예루살렘에서 헤브론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거든요.”
    “이스라엘인들과 외국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지름길이 있다는 말인가요?”
    “네.”

    헤브론에서의 첫날

    아마니 집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모두 나와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나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름이 ‘마클루베’라는 음식이었는데 쌀과 닭고기 등으로 만든 음식이었습니다.

    엄청 배가 고팠던 차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자꾸 더 먹으라고 권하시니 밥 한 숟가락 더, 닭다리 하나 더하며 자꾸 먹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잊지 않으시는 말씀.

    “얼마만큼 먹는지가 얼마만큼 사랑하는지를 표시하는 거에요.”

    최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 잔뜩 먹고 응접실에 나오니 또 차와 과자가 나오고 아버지인 아부 아흐메드(아흐메드의 아버지라는 뜻)가 직접 과자를 집어서 또 권하십니다. 에구구......

    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곧 있을 팔레스타인 총선 얘기가 나왔습니다. 아마니의 아버지는 하마스를 지지하고 어머니는 파타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왜 하마스를 지지하냐고 여쭤봤습니다.

    “저와 친한 사람들이 관계 되어 있기도 하죠. 하마스는 이집트에서 시작된 무슬림 형제단 운동의 일부입니다. 그리고 하마스는 학교나 자선과 같은 활동을 활발히 해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아마니의 가족들. 왼쪽 뒤편에 하얀 히잡을 쓰신 74세의 할머니가 보입니다. 오스만 투르크가 지배하던 시대 때부터 얘기해 주실 수 있다고 합니다.

    이어서 아부 아흐메드는 팔레스타인에서 무슬림(전체 인구의 약 90%)들과 기독교인(약 10%)들이 얼마나 함께 잘 살고 있는지를 설명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번 있었던 지방 선거에서 베들레헴과 라말라에서는 하마스가 기독교인들을 지원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선거와 각 정당에 대한 얘기를 길게 듣고 나서 팔레스타인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이 어떤 게 있는지 여쭤 봤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토지 몰수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토지를 몰수해서 이스라엘인들의 점령촌을 만드는 거죠. 두 번째 도로 봉쇄가 있는데요, 이스라엘 마음대로 도로를 봉쇄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는 경우가 벌어집니다. 세 번째는 물 문제인데요, 이스라엘이 수자원 전체를 통제하면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수자원을 개발하려고 하면 못하게 막습니다. 네 번째는 하늘을 통해 이동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죠. 다섯 번째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요르단을 가든 이집트를 가든 이스라엘의 허가가 필요합니다. 국경을 통제하고 있는 거죠. 여섯 번째는 장벽인데요, 오늘은 통과를 허가 했다가 내일은 거부하는 식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돌 맞을 뻔 했다

    아부 아흐메드와 긴 얘기를 나누고 팔레스타인 친구들과 함께 산책 겸 친척 집 방문을 나섰습니다. 어딜 가나 ‘헬로 헬로’ ‘웰컴 웰컴’하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한참 걷고 있는데 뒤에서 라에드가 동네 꼬마들에게 무언가 소리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아마니가 얘기하기를

    “이 동네 애들이 외국인을 본 적이 잘 없어서 외국 사람이면 무조건 이스라엘 사람으로 생각하고 돌을 던지는 거에요.”

    그래서 뒤를 돌아보니 정말 동네 꼬마들이 우리를 향해서 돌을 던지고 있었고 라에드는 아이들을 야단치고 있었습니다.

    해질 무렵 헤브론의 하늘이 아름다웠습니다.

    친척집 방문을 끝내고 집에 오니 가족들이 알자지라 방송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장면을 보니 사람들이 군용 차량에 돌을 던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오늘 제닌에서 이스라엘이 지하드 소속 사람을 체포했고, 사람들이 이스라엘 군인들과 싸우는 과정에서 사망자도 발생했다고 합니다. 제닌은 우리의 여행 계획에 포함되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라말라에서 오는 길에 느꼈던 눈물 어린 마음이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속에 풀리는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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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17 12:20:57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우리는 콘베이어 벨트 위의...



    라말라 시내 중심부에 있는 거의 모든 공중전화가 고장이 나 있어서 어렵게 아마니와 통화를 하고 오늘(1월12일) 아침 9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마니는 한국에 갔던 적이 있는 친구로 우리의 팔레스타인 여행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아마니를 기다리는데 주변에 있던 팔레스타인 경찰들이 먼저 말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어딜 가나 있는 일입니다.

    안개 자욱하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헤브론에서 팔레스타인 정부 경찰과 함께 찰칵. 사진에 보이진 않지만 모두 총을 들고 있다..



    그리고 경찰 가운데 한 사람이 질문을 해 와서 제가 간단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만들고 있는 장벽과 점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주 안 좋은 상황입니다.”
    “한국에 가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곳 상황을 알릴 건가요?”
    “물론이죠.”
    “좋아요.”

    경찰들과의 짧은 만남 뒤에 아마니를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반가우면서도 9시까지 헤브론에서 라말라까지 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 몇 시에 집에서 출발 했는지 물었습니다. 서안지구가 그리 큰 곳은 아니지만 헤브론은 아래쪽에 있고, 라말라는 가운데쯤 있습니다.

    “집에서 언제 출발 했어요?”
    “6시에요.”
    “6시?”
    “오는 길에 체크 포인트가 많이 있으니까 그렇죠.”

    팔레스타인인들에겐 체크 포인트(검문소)가 숨 막히는 일상생활입니다. 이스라엘이 도로 곳곳에 체크 포인트를 세워 놓고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가로 막거나 제한하고 있으니깐요. 언제 체크 포인트가 열리고 닫힐지, 그리고 언제 통과할 수 있을지를 모르는 상황에서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킬 수 있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겠죠.

    아무튼 이렇게 아마니와의 첫 대화를 끝내고 다른 친구들을 소개한 뒤 찻집으로 갔습니다. 찻집에서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 건지를 의논하고 헤브론으로 가기 위해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로 이동 했습니다.

    비 내리는 추운 날씨에 사람들이 체크 포인트를 지나고 있습니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는 사람은 잘 없습니다. 사진 오른쪽에 하얀색 히잡을 쓴 아마니와 그 뒤에 서 있는 동생 라에드


    갈란디야 체크 포인트를 지나기 위해서는 모두 4개의 회전문을 지나야 합니다. 회전문 위에 있는 파란불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들어가고 빨간불이 들어오면 회전문이 움직이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생산 과정을 통제하는 이들의 뜻에 따라 컨베이어 벨트 위를 움직이는 물건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체크 포인트가 있는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만 157개가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도 유동적입니다. 이스라엘이 기분 내키는 대로 여기에 설치했다 저기에 설치했다 하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회전문을 통과하면 두 번째 회전문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여기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스피커에서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말투가 계속 흘러나옵니다. 그러다 어떤 얘기가 나오니깐 아마니가 옆에서 설명을 해 줍니다.

    “나블루스와 제닌으로 가는 다른 곳의 체크 포인트가 닫혔으니 그 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은 통과 할 수 없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방송에서 체크 포인트가 왜 닫혔으며 언제 열린 건지에 대한 얘기는 없습니다. 또 물론 그런 것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그런 것까지 설명할 만큼 친절하진 않으니깐요.

    어쨌든 두 번째 회전문을 지나면 지금까지 수도 없이 해 봤던 신분증과 짐 검사를 합니다.  검사가 끝나면 세 번째 회전문을 지나고 마지막 네 번째 회전문을 지나면 검문소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마지막 회전문을 지나면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고, 한국말이었지만 분위기를 알아챘는지 아마니가 옆에서 이런 말을 남깁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매일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어요?”

    믿을 수 있겠냐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잠깐 화를 내는 것은 그야말로 별 일이 아니니깐요. 이 마을에서 저 마을, 이 도시에서 저 도시를 지날 때마다 매일 같이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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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1-15 01:57:28
  • 현지에서 [미니, 세계를 날다] 돌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1


    올드 시티에서 만난 이스라엘 군인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깐 좋다고 했다.


    미니가 1월8일(한국시각) 에미레이트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출발해 요르단을 거쳐 팔레스타인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10일, 함께 온 이들과 거리에 나섰습니다.

    거리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이 때가 무슬림들의 큰 명절인 ‘이드 알 아드하’(성지 순례가 끝난 뒤 맞는 이슬람 명절) 기간이어서 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는 것과 곧 있을 총선(1월25일)을 앞두고 여기저기에 후보자들의 포스터가 붙여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국의 설이나 추석과 같은 풍경을 느끼며 저는 일행과 함께 올드 시티(구시가)로 향했습니다.

    올드 시티는 동예루살렘 안에 있으면서 주위는 커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전체 크기가 그리 큰 곳은 아니지만 기독교 지구, 아르메니아 지구, 무슬림 지구, 유대 지구 등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길들이 미로처럼 복잡해서 잘 찾거나 부지런히 물어 다니지 않으면 헤매기 딱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올드 시티 안에는 서쪽벽(통곡의 벽), 알 아크사 사원 등 중요한 곳들이 여럿 있어서 많은 이들의 발길이 오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먼저 다마스커스 게이트와 무슬림 지구를 지나 유대인들이 성지로 생각하는 서쪽벽(통곡의 벽)으로 향했습니다.


    서쪽벽으로 가기 위해서는 또다시 검색대를 이용한 짐 검사를 받아야 했다.
    경찰이 사진은 찍지 말라고 해서 얼른 찍었다 ^^



    멀리서 본 서쪽벽 모습


    서쪽벽 앞에 서는 순간 예상했던 대로 참 허망했습니다. 말 그대로 그냥 벽일 뿐인 이곳을 차지한다는 명분으로 누군가가 큰 싸움을 일으킨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유물 발굴을 해 봐도 이 벽이 유대인들의 역사와는 별 관련이 없었다는 얘기는 둘째 치고, 설사 유대인 유물이라고 해도 그냥 돌로 쌓은 벽이라고 생각하면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 싸울 이유는 없어 보입니다.

    물론 자신들의 신앙이나 문화 속에서 어떤 하나의 물건이나 장소를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것이야 유대교나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평화를 염원한다는 종교의 이름으로 어떤 상징물을 차지하기 위해 수없는 피를 흘려야 한다면 인류의 역사는 결코 침략 전쟁을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종교의 이름을 빌려 파괴와 억압을 일삼는 행위는 앞으로 인류가 극복해야 할 커다란 과제일 뿐입니다.

    어느 곳이든 자신의 마음을 담아 기도를 하고 무언가를 염원하는 분들에게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서쪽벽과 올드 시티 주변의 성벽을 바라보며 돌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종교와 상징을 내세운 인간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과거에도 벌였고, 지금도 벌이고 있는 살인과 파괴의 어리석은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도하는 모습



    종교와 성, 국적에 관계없이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



    1967년 3차 중동전쟁 당시 올드 시티 성벽에 생긴 총알 구멍.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을 정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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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3 01:56:36
  • 현지에서 제닌 가는 길.
    사실 며칠 전부터 팔레스틴을 뜰 생각을 했다.
    왜냐면 이_러_저_러 하여서.
    그런데 못뜨고 애꿏은 짐만 자꾸 싸고 풀고 혼자 난리다.
    어쨌거나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제닌행.

    그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친구 연락처 하나 달랑들고, 버스 갈아타기놀이와 버스에 사람 찰때까지 기다리기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네시간 달려서 제닌도착. 그나마 라말라에서 제닌행 차를 탔을 때 옆자리에 앉은 아저씨와 신나게 수다를 떨어서 차안에서의 피로는 씻어졌다.

    아직 다섯시도 안된 시간인데 벌써 어둠이 깔린다.  
    공중전화를 찾지만 부서진 공중전화 밖에 발견할 수가 없다.
    두리번 거리는 나에게 타일랜드냐며 아랍인들 특유의 친근함을 가지고, 어떤 아저씨 친한 척 말걸어온다. 쌀쌀맞게(!) 공중전화 찾는 중이라니까 자기 핸드폰 내민다. 미안한 맘이 이내 들고, 어쩄거나 아저씨 노키아 핸펀으로 몇번에 걸쳐 전화를 해보지만, 전화 안받음.
    펠라펠(콩으로 만든 샌드위치, 정말 맛있다!)이나 먹을 생각으로 슈크란 하며 돌아서는데 기다리란다. 자기 동생이 영어를 할줄 안다면서(그 아저씨 웰컴 팔레스틴이라는 말외에 할줄 아는 영어는 손가락 수 정도인듯 했다. 아무튼.) 동생을 부른다. 동생의 번역왈,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이곳에 다시오라고, 전화 필요하면 다시 이곳에 오라고. 슈크란(아랍어로 땡큐) 연발하며 펠라펠 먹으러 나는 간다~ 정신없이 장사하는 시장골목에서 펠라펠가게를 찾지만 보이지 않는다. 아랍동네 어디에나 있는 그 많은 펠라펠 가게는 다 어디갔는지. 케밥집만 보인다.
    케밥집 아저씨, 펠라펠 파는 가게 어디예요? 펠라펠보다 케밥이 맛있단다. 아저씨 나, 아난 나바띠예요(채식하는 사람). 펠라펠 집이 저 골목 지나서 꺽어지면 있단다.  슈크란 다시 연발해주고 펠라펠 찾아나서는데 기다리란다. 또 뭐지. 아저씨 케밥 담던 손 수건으로 닦고, 펠라펠집까지 데려다주신다. 슈크란 베리 마취다.
    예루살렘보다 일 쉐켈 싼 펠라펠 먹고, 다시 공중전화 찾으러 가는 길에 시장 한귀퉁이 노점상에 놓인 아랍의 스위티(엄청 단 쬐그만  과자 혹은 빵)가 내 눈을 잡는다. 생각보다 싸게 점심겸 저녁 때웠으니, 스위티 하나 정도의 사치를 부려 볼 심산. 스위티 집어들고 얼마냐고 묻는데 아저씨 왈, 그냥 먹으란다. 웰컴 팔레스틴이라면서. 흑... 내가 짜게 살긴 하지만, 여기서 소금 마음을 가질 생각은 없다. 굳이 돈을 내려는데 그 아저씨 나보다 더 굳이 돈 내지 말란다. 옆에 있는 꼬마를 가르치며 자기 아들인데 포토포토 란다.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아랍사람들 정말 사진찍는 거 좋아한다. 정확히는 사진 찍히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다. 아마도 다른 사람이 자신을 기억해준다는 것에 즐거워하는 것 같다. 암튼 사진한장 찍고 혀속의 달콤함과 추위를 밀어내는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으로 유쾌한 기분이 되어 다시 전화기 찾으러 간다.    
    물론 역시나 전화기는 보이지 않는다. 유일하게 보이는 영어간판 파머씨...약국에 들어가서 돈 낼테니까 전화 한통화만 쓰자고 불쌍한 표정지으면 말한다. 아저씨 웰컴이라며 아랍 커피 먼저 내미신다. 커피 한잔 마시는 사이 아저씨 내가 내민 전화 번호를 보시더니 자기 전화기로는 접속 할 수가 없단다. (팔레스틴-이스라엘 전화회선이 좀 복잡하다. 이스라엘 핸펀 회선이 두개 있는데 셀콤은 오란지 회선에게 전화 걸수가 없다. 오란지는 셀콤에게 전화 걸수 있다. 팔레스틴 회선은 셀콤에게 전화 걸수 없고, 오란지와 팔레스틴 회선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난감이다. 이미 어둠은 깔릴대로 깔렸다. 가까운데 싼 호스텔이 있냐니까 있긴 하지만 비싸고, 지저분하고 안전하지도 않단다. 심지어 지금은 너무 어두워졌기 때문에 길에 걸어다니는건 위험하단다. 물론 예루살렘행 버스는 이미 끊겼다. 여기는 텔아비브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웨스트 뱅크 제닌이므로. 흑!
    암튼 옆에 있던 약국아저씨 친구, 자기가 전화해 주겠단다. 그 아저씨 핸편이 두개다. (많은 팔레스틴 사람들 핸펀이 두개다, 왜냐면 저렇게 회선이 복잡하므로.) 그러나 역시 이곳에서 활동한다는 그 사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는다.
    흠... 마지막 방책은 아까 제닌 오던 길에 같이 버스 타고 온 옆자리 아저씨가 준 전화번호로 전화 걸어보는 것. 그 아저씨 내가 제닌캠프 보러 간다니까, 아브라힘이라는 자기 친구가  제닌에 산다며 전화번호 하나 주셨다. 내가 생각해도 어이 없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저씨의 친구에게 전화 걸어서 나좀 도와 달라고 말해야 한다니. 누군지도 모른는 사람의 누군지도 모르는 친구에게. 하지만 다른 길이 없다.
    암튼 이생각 저생각 하며 커피 홀짝이는데 약국 아저씨 친구, 어느새 내가 들고 있던 아브라힘이라는 사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서 통화를 하더니 딸깍 끊는다. 그리고선 왈, 그 아브라힘이 5분 뒤에 이 약국으로 오겠다고 했단다. 흠.. 당혹스러움이다. 한국이었다면 저 아저씨 오바에 불쾌할 지경이겠지만, 여기는 팔레스틴이고 다른 문화다.
    어쨌거나 정말 5분뒤 누군가가 왔다. 가죽 잠바에 칼 주름 잡은 기지 바지 입은 아저씨 세명이 약국에 들어온다. 아... 헛다리 짚은거 같다. 아랍 아저씨들 위험하기 짝이 없다. 내 여행에서 가장 좋은 곳도 아랍 문화권이었지만, 가장 내 여행이 힘들었던 곳도 아랍이었다. 왜냐면 성희롱 천국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선 3분 결정을 해야한다.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이분법적으로다가 후다닥 판단하여 처신하지 않으면 낭패보기 일수다.
    그러나 지금은 판단의 선택지가 없다. 그냥 따라가는 수 밖에. 그 나마 이 약국 아저씨 친구 핸펀에 저 사람 핸펀 번호가 남아있고, 난 눈에 잘 띨수 밖에 없는 외국인 처지이니, 저 사람들이 왠만한 간이 아니면 날 어쩌지 못하리.



    쓰다만 글이지만... 지금 세벽 네시입니다. 눈이 감기네요.
    내일 이어서.. 암튼 결론은 저 사람들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다시 예루살렘으로 무사귀환하여서 컴퓨터 앞에 앉아 있습니다. 암튼 오늘 컴퓨터 앞에 사람이 없어서 거의 인터넷을 쓸수 있을 때 열심히 써야 한다는 일념으로 별 내용없는 조각글이지만 남겨봅니다.


    글 :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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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09 10:38:19
  • 현지에서 헤브론에서 한글을
    헤브론에서 한글을 보았다.
    아.. 이건 거의 감동수준인데, 영어의 바다에서 괴로워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느낄수 없는 것이리라.

    헤브론에 평화꾼(?)들과 함께 며칠을 보냈다.
    그곳에서 뭔가 꼼지락 거리는 친구들이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
    무언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함에서 오는 무기력한 피곤함이다.
    하루종일 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각자 책을 보거나 아랍어 공부를 하는게 소일꺼리다.
    그러다 마침내 몇시간의 토론을 거쳐 데모질하자고 의기투합.
    어떻게 판을 만들지 열심히 샬라샬라...
    다들 기대에 찬 눈빛을 가지고 다음날의 행운을 빌며 굿나잇 인사를 했다.
    그러나.
    정작 다음날  아침 우리가 깨어났을 땐, 내내 좋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 우박처럼 내리치는 비를 봐야했다.
    기대 왕창 무너짐이다.
    다시, 그럼 오늘 하루 우린 뭘해야 하나?
    궁시렁 궁시렁 토론중...
    여기에 있는 여러 공간들을 방문해 보자는 결론.
    그래서 방문한 곳이 cpt(Christian Peacemaker Teams http://www.cpt.org ) 사무실이다.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몸으로 받으며 꼬부랑 꼬부랑 길을 간다.
    길에서 만난 이스라엘 군인의 질문에 기독교인으로서 저쪽 빌리지에 있는 교회에 방문하는 길이라고 가볍게 답변해주고.

    방문한 사무실은 아주 작은 공간이었다.
    실내에 들어서서 숨 돌릴 여유도 없이, 그곳에서 발렌티어로 있다는 캐나다 할아버지가 올드시티를 보여주겠다며 옥상으로 가잖다.
    다시 빗속에서 올드시티 설명을 듣는다. 저곳은 학교였는데 지금은 지금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관망대(?: 모르겠다, 군사용어는...--;)로 쓰고 있단다. 이쪽은 많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다들 이사 아닌 이사를 하게 되어서 아무도 살지 않고...
    한창 동서남북을 가리키며 할아버지가 설명하는데 반대편 건물 옥상에서 이스라엘 군인이 언제라도 쏠 준비가 된 자세로 총을 들고 우리를 쏘아보고 있다. 할아버지 말에 의하면 우리가 사진을 찍을까봐 감시 중이란다. 그곳은 사진을 찍으면 안되는 군사지역(!)이다.
    어쨌거나 씁쓸함, 서늘함, 답답함을 안고 옥상에서 내려와 사무실로 다시 들어갔다. 사무실 하얀 벽 곳곳엔 포스터와 극적인 장면이 찍힌 사진들이 붙어있다. 그곳에서 발견한게 한국어가 찍힌 포스터다.
    면이 삼 분할 되어서 영어, 한글, 스페인어(혹은 프랑스어)로 씌여있다. 무슨 특별 주간 헌금 포스터다. 세계 평화 헌금 같은 것. 한국단체 출처를 보니까, 한국 감리교 연합회 라고 적혀있다. 그 cpt멤버 말로는 아직 한국 어떤 교회에서도 cpt에 참여하고 있진 않지만 일부 교회에서 관심을 보인다고.
    놀랍다. 기장도 아닌 감리교라니... 뭐, 감리교가 그래도 진보적(?)인 기독교파라는 거는 주어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건 옛날 말이고 요즘은 온리~ 선교하여 구원받자인줄 알았는데 그런것만은 아니었나 보다.
    아무튼 팔레스틴에 관심은 갖는 여러방면의 사람들이 있다는 건 반가운일.

    난 종교가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 종교의 힘이 참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든간에.
    이를테면 지난 8월 한국 교회의 베들레헴 평화행진 이라든가, 힘든 상황에서도 알라를 얘기하며 웃음을 잃지 않는 어떤 팔레스틴 언니의 모습이라든가, 2000년전 얘기를 하며 성경에 의하면 이곳은 우리 땅이라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이스라엘 군인이라든가...

    아무튼 그곳 cpt에서 평화트레이닝 코스 같은 걸 운영한다고 한다. 단기간이 아니라 4-6주에 걸친 코스다. 각 국에서 온 기독교 친구들이 팔레스틴에 머물면서 팔레스틴 현실을 같이 보고, 평화 감성을 키우는 것 같다.
    혹시 이곳 분들중에서도 기독교인이 면서 팔레스틴활동을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면 혹 참고 될까 하여....

    http://www.cpt.org

    (2004년 11월 20일 언저리..)


    글 :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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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09 09:35:25
  • 현지에서 salam~ +4
    저는 그냥 여행자예요.
    팔레스틴이요? 아는거 별로 없어요. 그냥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봤죠.
    다행히도  신문과 텔레비젼이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며 그걸로 먹고 산다는 건 알아서, 그들의 말을 믿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치우고 나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려고 별 노력하지도 않았죠.
    그러다 여행에서 팔레스틴에 가면 뭔가 활동을 할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죠. 팔레스틴 사람들의 분노를 만났죠. 그래서 이곳에 왔어요.

    그런데 할수 있는게 뭔지 몰라서 어리벙 더리벙 거리고 있죠.
    여기에 있는 이런저런 곳도 기웃거리는데 나 같은 사람들은 안보이고 다들 단지 팔레스틴 활동을 위해 각 나라에서 날아온 멋진 친구들만 보이네요. 뭔가 말을 걸고 싶은데 영어도 딸리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엄격한 분위기와 세련된 메너의 유럽친구들 분위기에 쫄아버리네요.
    그래요 처음엔 그 친구들 웃음뒤의 엄격함 같은 걸 느끼면서 당혹스러웠죠.
    나는 오래전에 엄격함과 굿바이 했고, 그럼에도 엄격함이 미련을 가져서 발로 밀어내는 중이니까. (아.. 이해가 잘 안되실 텐데...다음에 기회가 되면 설명할께요.)

    어쩄거나 대체로 영국, 프랑스, 미국.... 뭐 이런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많아 보여요. 쳇, 지들 나라에서 불 질러놓고 불끄는 애들도 다 그 애들이네.
    정부와 돈을 흔드는 사회에서도 걔네 나라가 중심인데, 이 판에서도 쟤네 나라애들이 판을 치는 구만. 벨이 꼴리죠.
    그렇다고 내가 무슨 나라 편가르기 하자는건 아녜요. 국가, 정부...이런거랑 개인은 다르다고 생각하니까. 나라, 민족 이런거랑 내 가치관은 좀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 그런데 벨이 자꾸 꼴리죠.
    왜냐면... 괜히 내가 영어가 딸리는데 걔네가 말을 너무 빨리해서 못 알아먹으면, 흑... 스스로에게 막 화를 내죠, 영어공부 좀 하지... 게으른 반다...이러다가 엉뚱하게 화살을 그애들한테 돌리는 거죠.

    그리고 이유는 또 있어요. 내가 그렇게 치졸하기만 한건 아니거든요.
    걔네 정부들 다른 나라 피 쪽쪽 빨아서 지네 나라 부자 만들었죠. 그리고선 선진국이네 뭐네 지들이 떠들면서 선진국은 이래서 성공했다면서 지네나라가 뭐 대단한 문화를 가졌기 떄문에 잘 사는 것 처럼 이야기 하죠. 사실은 피빨아먹어서 살찐 거면서. 어쩄거나 그래서 걔네나라 애들 좋은(?) 교육 기회 많이 가졌겠죠. 그래서 인권이 어쩌네 사회가 어쩌녜, 무슨이즘이 어쩌네라고 떠들어 대죠. 국제연대가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피 빨아먹힌 나라 사람들은 어떤가요?
    피 빨아먹힌 나라에서 왔다는 국제 활동가 아직 여기서 저는 본적 없죠.
    암튼 그 친구들 볼때 마다 여러감정이 충돌하죠.
    아... 이렇게 다른 나라에서 운동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니 감동이야, 이러다가 또 다른 감정에 부딪치고....왠지 그 사람들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활동을 사치나 고상한 악세사리라고 밀어붙여 버리고 싶은 폭력적인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기도 하고....

    암튼 정말 넓지 않은 머리로 이런저런 생각하랴, 안되는 영어 이해하랴,  하루하루 다음날 계획 세우랴, 생각 보다 술술 새 나가는 돈 막으랴.... 정신이 없죠.

    어쩄거나 불쑥 유령처럼 글만 올리고 사라지면 안될것 같아서 제 소개 하려고 쓰기 시작한 글인데, 두리뭉실 잡다하게 얘기했네요.
    언제까지 팔레스틴에 머물지 알수 없어요.
    내일 떠날지, 일주일 뒤 떠날지.... 어쩄거나 여기 있는 동안은 글 올리려고 노력할 꺼예요.
    하지만 무슨 활동보고나 그런 글은 아녜요. 그냥 제가 본것들 느낀 것들 간단히 올리는거예요. 글이 너무 사적(?)이라고 느껴져서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시거나 뭐.. 적절하지 않다... 이런거 있으면 메모 남겨주세요.


    글 :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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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03 06:51:26
  • 현지에서 모하멧 동생이야기
    헤브론에 다시가다.


    죽음의 도시 같던 헤브론에 다시 왔다.
    얼마전에 왔을땐 올드시티만 봐서인지, 정말 죽음의 도시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시와서 다른 마을을 둘러보니까, 이곳도 사람사는 곳인지라 생기가 느껴진다.

    동행한 사람들이 해대는 빠른영어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숙소 옆집에 사는 애가 놀러왔다. 자기네 집에 가서 잭키챙 영화를 같이 보잖다. 뭐 그 지루한 영화를 볼 마음은 없지만, 일단 이 영어로 부터 내 귀와 마음을 쉬게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쫄레쫄레 따라나섰다.
    거기서 그 애의 형 모하멧과 어머니를 만났다.

    모하멧의 다른 동생이야기....
    모하멧에게 18살된 동생이 있는데, 머리가 이상하단다.
    기억력이 아주 짧아서 뭔가를 사러 가게에 갔다가도 내가 왜 여기 있냐고 오히려 가게 주인에게 묻는단다.. 영화 메멘토 같은...
    동생이 이스라엘 군인에게 머리와 다리에 총을 맞아서 그렇단다.
    이유를 묻고 싶은데, 약간은 겁이 난다.
    사실 15살 아이가 머리와 다리에 총을 맞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3년전 이스라엘 탱크 구경했다고 갑자기 퓽~퓽!!
    군인이 남동생에게 총을 쏘더란다.
    그게이유다.
    집앞을 지나가는 탱크가 신기해서 따라가 구경한 것이 15살 아이가 머리와 다리에 총을 맞은 이유다.
    이유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뭔가 어색하다. 보통은 이유라는 단어를 쓰고 말을 할떈 어느정도의 개연성이나 논리 비슷한, 뭐 그런게  뒤를 따라오는 문장이어야 하는데.....

    .......
    길에서 거꾸러져 강간당하고 삶에서 마음을 놓아버리는 것...그런것..
    길에서 탱크를 쳐다봤다고 총을 맞고 긴 기억 기능을을 상실해 버린것...그런것...
    납치당해서 속아서 전쟁터에서 남자 군인들의 성노예가 되어 버린것....그런것....
    가난해서 원한는 삶의 길을 포기해 버리게 되는것.....그런것...
    .......
    모하멧 동생이 긴 기억 기능을 상실해 버린게 정말 단순히 뇌 손상만의 이유일까? 어이없는 상황에 대한 정서적 쇼크 때문일꺼라고 상상한다면 좀 오바일까...
    오바이든지 말든지......

    어쩄거나 팔레스틴엔 보나마나 장애인들이 정말 정말 많을 텐데... 그 사람들의 인권은 어디서 이야기를 하고 있나...
    이스라엘 물러가고, 쌓아올린 높은벽 무너뜨려야 한다는 목소리에 가려서 장애인들 인권얘기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오고 있을까?
    아주 천천히 부는 바람소리 처럼 들릴듯 말듯하더라도 침묵당하거나 침묵하지 않고 어디선가 그 소리가 나오고 있었으면.
    이해받지 못하고 '큰'목소리에 묻혀 '중요한' 집회장에서 그 말들이 그냥 떠밀려 떠밀려 굴러다닌데도......



    (2004. 11.20)

    글 :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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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03 05:28:10
  • 현지에서 벽속에 갇힌 무니라 아줌마네 집...
    살렘알레이쿰~
    어설픈 영어로 어리버리 이 나라 저 나라 헤매고 다니는 중인 반다입니다.
    요즘은 팔레스틴에서 헤매고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qalqiliya에 있는 무니라 아줌마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아줌마네는 원래 비닐 하우스에서 화초를 가꿔서 파는 일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4년 전 이스라엘 군인들이 비닐하우스를 불도져로 밀어버리고 '벽'을 만들기 전까지는요.
    아줌마네 집 십여미터 앞엔 높은 벽이 있고, 그 벽을 쭉 돌아서 작은 철문을 지나가면 많은 이웃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갈수 있습니다. 집 바로 뒤쪽엔 철조망이 꽁꽁 길게 막고 있습니다. 그 철조망 바로뒤엔 하얀 건물의 빨간지붕, 마당엔 멋있는 정원수가 있는 유태인 마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남북한 dmz같은 공간에 무니라 아줌마네 집이 놓여 있는것이죠. 말했다시피 4년전 어느날 갑자기 이스라엘 군인들이 와서 그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인 비닐하우스와 그 안의 화초를 밀어버리고 벽을 짓고 철조망을 만들었죠. 지금 생계수단은 아무것도 없구요. 벽을 만드는 그들은 팔레스틴 사람들의 무엇도 고려하지 않죠. 그냥 종이로된 지도에 자를 대로 금을 긋듯이 그렇게 벽을 만들죠.  
    막무가네인 그들에게 조금만 벽을 뒷쪽으로 만들어 달라는 말을 할수도 없죠. 그들이 하필 아줌마네 집을 관통하며 벽을 만드는데는 이유가 없으니까, 아무런 논리와 이유가 없기 때문에 그들을 설득할 근거도 없는거죠.

    오늘 아줌마네 집에 갈때 미국인 유태인 친구들과 동행했죠. jews for a free palestine(www.renouncealiyah.us)이라는 단체에 있는 친구들과 우연히 함께말이죠. 말하자면 좌파(?) 유태인즈음 이라고 할까나요... 그들은 수준높은 교육을 받고 인권과 국제법을 논하며 팔레스틴에 견학온거죠. 그에 비해 내가 길에서 만난 많은 팔레스틴 친구들은 코카콜라를 들고 지나가는 외국인 여자에게 추파를 던지거나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분출할지 몰라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다가 몇년간 감옥행을 하거나 운이 좋다면 며칠 훈방으로 나오겠죠. 친구들은 영웅취급해줄 것이고...

    아줌마네 집을 떠나 돌아오는 길에 요리사가 직업이라는 미국 유태인 친구가 눈물을 터뜨리더군요. 내 상상으론: 미국인이며 유태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단란한고 행복한 가정에서 매일 기도 하며 자라왔고, 어릴적엔 내가 크면 우리 조상들의 땅이자 성스러운 땅인 이스라엘에 성지순례가야지 라는 생각도 했었겠죠. 그러다 어찌어찌하여 팔레스틴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고, 이렇게 팔레스틴 땅에 온것이겠죠. 아마도 자신의 자랑스러우신 유태민족이 어떻게 팔레스틴인의 삶을 파괴시키는지 보면서 그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감정들이 눈물로 나온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마음이 자꾸 뒤틀리죠. 사실 그 미국 친구들 정말 멋있는 친구들이었어요. 그중 한 명은 어린이 강간에 관한 인권단체에서 일하고 있고, 또 한 명은 사형제도 폐지에 관한 단체에서 일하고 있죠. 대강 내가 이해한 바로는 상당히 액티브하게 열정적으로 일하는 친구들인것 같아요. 어찌되었건 마음이 자꾸 뒤틀려요. 팔레스틴 관공서 사람들도 미국인이자 유태인인 그들이 팔레스틴에 관심을 보이고 적극적 행동을 미국에서 만들어 간다는 사실에 조금 오바해서 표현하자면 황.공.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하고...
    사실 그들은 많은 것을 할수 있죠. 팔레스타인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할수 있어요. 미국인이고, 유태인이니 그 힘이란 엄청나지 않겠어요?
    모르겠어요.. 그 뒤틀리는 감정들.
    아줌마네 집에 갔다가 느낀 그 답답한 감정들이 분출된 곳을 찾지 못하니까, 괜히 그 친구들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뒤틀린 감정이 향하는 건지....

    글 :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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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12-03 01:4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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