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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일기 - 09/09/16

올리브, 2009-09-17 19:3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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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펜을 안경에 걸고 있는 무함마드>

1. 아파치

친구들이 테레비 소리를 낮추더니 갑자기 하늘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를 들어보라고 한다. 처음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렸다. 다시 들어보라고 한다. 헬리콥터 소리란다. 그러고 보니 '두두두두'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 어제 오늘 마을의 하늘 위로 이스라엘의 아파치 헬리콥터가 떠다닌다.

2. 무함마드

툴카렘에 가서 ‘영어-아랍어, 아랍어-영어’ 사전을 샀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쓰려고. 가게 아저씨가 65 셰켈짜리를 60셰켈에 가져가라고 하더니 와엘과 나에게 좋은 펜도 하나씩 줬다.

농장에 와서 노는데 무함마드가 자신의 팔에 하트 모양을 그리면서 자기가 나 좋아한다고 한다. 여기서는 연인이 아니어도 친구들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한다. 무함마드가 펜을 가지고 놀아서 내가 무함마드보고 펜을 가지라고 했다. 그러니깐 무함마드는 자기는 글을 쓸 줄 모른다며 펜을 안경에 걸고 웃었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싶었다.

3. 왈리드


<왈리드는 웃는 모습이 참 예쁘고 잘 웃는다. 그런데... 사진기만 들이대면 표정이...>

무함마드가 자기 팔의 근육을 보여 주면서 일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한다. 나는 내 팔을 보여 주면서 아무 힘이 없다고 했다. 왈리드는 칠면조도 잘 잡고 양도 잘 잡는다. 무함마드와 왈리드의 팔을 보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해서 생긴 근육이 아니라 일을 많이 해서 생긴 근육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책에서 세상을 배운 인생과 직접 겪고 이겨낸 인생 마냥

4. 슈룩


<슈룩 집에서 밥을 먹고 배는 잔뜩 부르지, 졸리기는 하지... 미니 왼쪽 어깨 뒤로 작게 보이는 붉은 불빛이 점령촌의  불빛이다>

한창 자주 슈룩 집에 놀러가다가 한동안 놀러 안 갔다. 어제는 오랜만에 슈룩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차를 마셨다. 슈룩과 밥을 먹으며 나눈 대화

슈룩 : 미니, 내한테 칼 많데이.
미니 : 엥?
슈룩 : 내한테 칼이 많으니께 밥 묵고 나서 내가 닐로 직일끼다. (내가 지어낸 말이 아니라 슈룩이 정확히  i will kill you라고 했다)
미니 : 와?
슈룩 : 니 와 그동안 우리집 안 왔노?
미니 : 어... 저기... 그니깐... (미니가 슈룩 동생 저밀라를 바라보며 목을 숙여 내밀면서) 저밀라, 밥 묵고 나서 낼로 무그라
저밀라 : 엥?
미니 : 슈룩이 내 지긴다칸다.

아부 마흐무드도, 마흐무드도, 아셈도 내 보고 와 요새는 자기 집에 안 오냐고 한다. 무슨 문제 있냐고 한다. 사실 특별한 일은 없는데... 아무튼 7자식 가운데 아부 마흐마드가 제일 사랑하는 게 슈룩이다. 왈가닥 슈룩.

미니도 까칠한 인간보다 왈가닥이 좋다. 진보고 보수고 남자고 여자고 한국 사람들은 참 까칠한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자기 까칠한 게 무슨 자랑인냥 할 때도 있다. 그래서 가끔 한국으로 돌아가기 싫을 때가 있다. 운동을 하는 것은 좋은데 까칠한 가슴들과 또 마주 대할 자신이 적다. 왈가닥과는 실랑이를 벌여도 까칠한 인간과는 문제가 있어도 실랑이도 벌이기 싫다.

물론 까칠한 가슴도 살면서 억눌리고 상처 받아서 그렇게 된 거다. 오죽 했으면 그렇게 까지 됐을까도 싶고, 그래도 그 가슴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어려운 삶을 돌아보자고 하는 것을 보면 박수를 보낸다.

다만 내가 안타까운 것은 까칠한 가슴은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이다. 또 까칠한 가슴은 지금은 어려운 삶을 돌아보자고 하지만 때가 되면 너무도 쉽게 그 어려운 삶을 팔아서 자기 이익을 챙기게 된다. 그게 돈이든 감정이든.

우리 모두 분노에 뜨겁고 인간에게 따뜻한 가슴을 가졌으면 좋겠다. 부정의에 맞서는 것과 인간에게 차가운 것은 구별되어야 한다. 뜨겁고 따뜻한 가슴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고 비뚤어진 세상도 바로잡게 될 것이다. 나도 그동안 내가 잘못 했던 것을 돌아보며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더 더 더 많이 노력 해야겠다.

5. 실랑이

슈룩네서 저녁을 먹고 와엘과 마흐무드, 아셈, 무함마드 등과 길을 걷는데 동네 셰밥 하나가 다른 셰밥들과 벽에 기대어 놀고 있다 내가 지나가니깐 뭐라 뭐라 중얼거린다. 그렇게 외국인을 놀리기도 하고 별 나쁜 뜻 없이 장난을 치기도 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기분 나쁠 때도 있고, 오늘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도 있다. 그런데 역시 흥분 잘하는 우리의 아셈...

그 셰밥과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한다. 아랍어로 말을 해서 잘 모르겠는데 그냥 상황을 상상해 보면 이런 거다.

셰밥 : 아리까리모두까리숑~~~~(내가 한국어 하는 것을 흉내낸다고 하는 거다)
아셈 : 그만 해라
셰밥 : 뭐 임마
아셈 : (아셈이 화가 잔득난 얼굴로 한 걸음 나아가며) 내가 고마하라 켔제. 와 자꾸 그라노!
셰밥 : 내가 머 어쨌는데 새끼야

흥분 잘하기로는 아셈을 훨씬 능가하는 마흐무드도 한발 나선다. 그리고 주위에서 말려서 상황은 일단 정리가 됐다. 내가 보기에는 그 셰밥도 크게 나쁜 뜻은 없었다. 다만 이 마을에 외국인이 다니는 것이 신기한 일이고 장난을 치고 싶었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을지 싶다.

얼마 전에는 와엘이 화를 엄청 낸 적이 있었다. 언제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마냥 웃던 와엘이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다. 이유인 즉 우리가 길을 다니면서 기분 나쁜 일 겪은 사례를 들었기 때문이다. 와엘뿐만 아니라 마흐무드나 아셈도 우리에게 혹시나 언짢은 일이 생길까 잔뜩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오늘은 마침 다함께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그 셰밥이 장난을 쳤으니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법도 했다.

6. 제나도 모두 건강했으면...

사람들을 만나보면 척 봐도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젊은 나이에 이가 여러 개 빠져 있는 사람도 많고, 심각한 비만에, 조금만 걸어도 사람들이 헐떡인다. 어디서 누가 죽었다고 하면 암(특히 폐암이 많다)에 걸려 죽은 사람이 많다.

여기 사람들이 사는 걸 보면 그럴 것도 같다. 특히 여성들은 어지간하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지, 설탕과 담배는 엄청 먹어대지, 빨래와 설겆이 할 때 세제는 그야 말로 팍팍!!, 운동이라는 것은 잘 없지...

정치와 경제 상황은 건강을 나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죽이고 부셔대지, 속은 답답하고 열 받지, 돈이 없으니 비싼 병원에 가기도 어렵지,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건강에 대한 관심을 가질 거시기도 관련된 정보를 얻을 기회도 적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탈랄. 한국에서 집회를 할 때 연대 메세지를 자주 보내곤 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우리의 활동이 잘 되도록 늘 신경 써 준다>

얼마 전에 나블루스에 가서 탈랄을 만났다. 3년 전에 왔을 때 만났던 아들이 있었는데, 그 때 탈랄의 말이 아들이 병을 가지고 있고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했다. 3년 뒤 다시 와 보니 탈랄이 누군가의 사진이 찍혀져 있는 옷을 입고 있다. 누구냐고 물었더니 3년 전에 말했던 그 아들이 2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나에게도 옷 한벌을 줘서 평소에 입는다.


<길에서 만난 제나와 찰칵!>

길을 가다 제나를 만나 사진을 찍었다. 제나는 아직 어려서 팔레스타인이니 뭐니 그런 거는 모를테다. 자신이 살아갈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도... 아무쪼록 제나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제나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지는 그런 미니가 되면 좋겠다.

- 글 : 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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