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문소를 지키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
와엘 집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데 마젠이 요가 얘기를 꺼냅니다. 굳이 요가라고 할 것은 없지만 몸 풀기 동작을 보여 줬습니다. 그러니깐 마사지 얘기를 꺼내서 잠깐 만져 주려고 엎드리라고 했습니다. 웃옷을 들쳐 올리는데 허리 쪽부터 척추를 타고 등에 길게 상처가 나 있습니다. 인티파다 때 이스라엘군 총에 맞아서 난 상처라고 합니다.
내가 만일
툴카렘 지역은 이스라엘이 2002년 장벽 건설을 시작한 초기부터 장벽 때문에 피해를 받고 있는 지역입니다. 특히 장벽이 1948년 전쟁 휴전선인 그린 라인을 넘어 서안지구 안쪽에 세워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린 라인과 장벽 사이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장벽이 들어선 뒤 장벽 너머 고립된 지역으로 들어가려면 이스라엘에게 별도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허가는 주로 장벽 너머에 땅이 있는 사람들 가운데 40세 이상의 결혼한 남성 일부를 대상으로 발급됩니다. 이스라엘의 생각은 결혼 안 한 젊은 남성은 그들이 말하는 ‘사고’를 치지 않겠냐는 거지요.
남성에 비하면 여성이 허가를 받기는 쉬우나 여기는 여성보다는 주로 남성이 노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외에 집안사람을 만나러 가려고 힘들게 허가를 얻어도 허가 시간이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아 몇 년 만에 만나도 잠깐 얼굴을 마주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1948년 전쟁 때 이스라엘 군인들이 대부분의 아랍인들을 추방했는데 그 때 쫓겨나지 않고 남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랍인이라고 해도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그나마 장벽을 오가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사진1 아흐마드 가넴
검문소 근처에서 오이 등의 농사를 짓고 있는 아흐마드 가넴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습니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검문소 근처에 서 있기만 해도 꺼지라고 소리를 친다고도 하고, 옆에 있는 비닐하우스를 가리키며 비닐하우스를 폭격하기도 한답니다. 내가 만일 농민이라면 더운 날 힘들게 농사를 지었는데 다음 날 보니 비닐하우스며 밭이 포탄에 망가진 장면을 봐야 하는 심정은 어떨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가족이라고 하면 직계 가족 정도를 얘기하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이 가족이라고 하면 사촌, 팔촌을 넘어 그야 말로 대규모의 집안사람을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이들은 집안사람들과의 관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입니다. 하지만 아흐마드 씨의 경우도 장벽 너머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어서 그저 전화로 연락을 하는 정도라고 합니다. 아흐마드 씨는 장벽 너머에 땅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통행 허가를 받기 어려운 거지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해서 무언가 바라는 것은 없냐고 물었더니 크게 웃으며 ‘아무 것도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좀 더 자세하게 말해 달라고 하니깐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직업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말만 할 뿐이니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하네요. 어제 만난 한 팔레스타인인도 자치정부 공무원이 지역 사정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도로를 건설한다며 답답해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장벽이 들어서기 전에는 이스라엘 사람들과 만나고 그랬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매일 만났다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그저 평범한 관계를 이루고 살았다고 합니다.
사진 2 바쌈 아흐마드 이스마엘
검문소 문은 하루 3번 6시30분, 12시30분, 4시30분에 열립니다. 12시30분, 장벽 너머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시도 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벌어지지 않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인터뷰를 잘 안하려고 하는 겁니다. 이유인즉 혹시나 외국인과 인터뷰를 했다가 허가증 받는데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습니다. 동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이 혹시 추방 당할까봐 인터뷰하기를 꺼려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몇몇 분들이 우리를 지나치고 나서 장벽 너머에 땅을 가지고 있는 바쌈 씨가 흔쾌히 자기 얘기를 들려 주셨습니다. 장벽이 들어서기 전에는 모든 가족이 밭에 가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직 바쌈 씨만이 허가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올리브 나무가 열매를 맺어서 그걸 죄다 딸 손도 없고, 비닐하우스 같은 것을 하려고 해도 그걸 설치할 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작업을 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장벽이 들어서기 전에 비해 수입이 90%가량 떨어졌다고 하네요.
그나마 매일 일을 하러 갈 때도 혹시 쇠붙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나 해서 이스라엘이 설치해 둔 검색기를 통과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매우 기분 나쁘지만 힘이 없으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배와 단절
장벽 사진을 찍다가 통역을 해 주던 슈룩에게 우리는 외국인이라서 사진 찍는 게 괜찮을 건데 팔레스타인인도 사진 찍는 게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괜찮아요.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은 사진이 필요 없어요. 우리 마음속에 있으니까요.
이스라엘 군인들과 얘기를 해 보려고 저쪽 편으로 걸어가서 ‘헬로우, 헬로우’ 하는데 팔레스타인 친구들이 돌아오라고 손짓을 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봐 걱정하는 겁니다. 이 때의 무슨 일이란 물론 총을 쏘는 것이겠지요.
철조망 너머 보이는 비탄 지역은 그린라인과 장벽 사이에 갇혀 버렸다
3명의 이스라엘 군인에게 차례로 말을 걸었습니다. 첫 번째 군인은 얘기를 할 수 없고 자기 쪽으로 넘어오지 말라고 하면서 차 안에 있으라며 돌아서 버립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군인은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말을 걸어도 못 들은 척 합니다.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야 이 개새끼야. 사람이 무슨 말을 하먼 대답을 해야 될 거 아이가’가 튀어 나왔습니다.
이런 게 참 싫습니다. 같은 인간인데 지배당하는 자는 지배하는 자를 향해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분노하고 복종해야 하고, 지배하는 자는 지배당하는 자를 향해 총을 들이대고 소리 치고 무시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상부의 지시 때문인지 아니면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들의 행동이 떳떳하지 못해서인지 지배하는 자는 곁에서 바라보는 이의 눈빛마저 회피했습니다.
장벽보다 더 두텁고 높은 인간의 단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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