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미니, 세계를 날다] “이런 것이 삶이에요.”

올리브, 2006-01-27 16:04:44

조회 수
4285
추천 수
0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제닌에서의 하루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가운데도 가장 위쪽에 있는 도시 제닌을 찾았습니다. 2002년에 있었던 제닌 학살과 ‘아나의 아이들’이라는 영화 등을 통해 제닌은 저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01 가산.JPG

사진1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며칠 전에 이스라엘 군이 와서 파괴 했습니다. 두 사람이 죽었죠. 이스라엘은 그들이 이슬람 지하드 소속이라고 했어요. 하지만 이 곳은 빵집이었습니다. 사건이 있고 다음 날 여기서 100m 떨어진 곳에서 머리 하나와 팔 하나를 찾았습니다. 지금도 사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무언가를 보여 주겠다고 하면 어지간하면 다 보는 저였지만 잘려 나간 머리 사진을 보자고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돌려 보니 며칠 전 헤브론에서 본 알 자지라 뉴스의 현장이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뉴스의 현장(?)을 떠나 우리는 2002년에 파괴된 제닌의 무카타(팔레스타인 정부)를 찾았습니다.

02 무카타.gif

사진2 완전히 파괴된 무카타(왼쪽). 건물 잔해 곳곳에 꽂혀 있는 팔레스타인 국기(오른쪽)


제닌의 무카타는 2002년 공격 당시 1,000여명이 근무를 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른 도시에서 무카타들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미리 피하는 바람에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몇 년 세월이 지난 지금 파괴된 무카타 주변에서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부서진 무카타를 뒤로 하고 다음 찾은 곳은 우리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던 넓은 들판과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여러 날 계속 되는 여행으로 몸도 약간 피곤했지만 매일 같이 죽음과 파괴의 모습을 보다보니 마음도 약간 피곤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03 들판.JPG

사진3 이곳이 점령지가 아니라 농민과 자연이 건강하게 소통하는 그런 공간이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지만 비록 이곳이 고난의 땅일지라도 맑은 자연은 저에게 잠깐의 휴식을 주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농민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소며 닭이며 낯선 이를 보고 짖어대는 개들이 한국의 농가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낯선 저희를 친절히 맞아 주었고, 차와 과자를 대접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점령의 흔적을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우물을 파기 위해 이스라엘 정부에다 허가 신청을 했지만 거절당했어요. 이곳에는 물이 큰 문제에요.”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지만 농민들에게 물은 없어서도 부족해도 큰 일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탐욕은 평생 농사를 짓느라 제닌 밖으로 나간 본 적이 없다는 농민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습니다.

04 농민들.JPG

사진4 가산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함께 간 셀림은 농민이신 한국의 부모님을 떠올렸습니다.


농가를 나와 우리는 하룻밤을 머물기 위해 가산의 집으로 갔습니다. 차와 커피, 과일, 과자가 계속 나오고 가산의 부인은 우리를 위해서 피자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TV도 보고 이것저것 먹으며 놀다가 가산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때려 부수죠. 그리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늘 새로 짓구요. 이런 것이 삶이에요.”

누군가는 늘 부수고, 누군가는 늘 새로 짓는 팔레스타인. 왠지 마음 뭉클한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의 실상을 다음날 제닌 난민촌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앞에서 얘기했던 무카타와 함께 2002년에 제민 난민촌은 완전히 파괴 되었습니다. 수 십 명이 죽었구요. 그런데 지금은 많은 집들이 새로 지어져 있습니다. 2002년의 파괴와 살인의 흔적은 당시에 부서지지 않고 남아 총탄 자국을 안고 있는 집들이었습니다.

05-새-건물과-벽화.gif

사진5 2002년 파괴 이후 해외 원조로 새로 지어진 집들(왼쪽). 제닌 난민촌에 있던 벽화(오른쪽).


이런 것이 삶인 걸까요? 그 큰 죽음과 파괴 속에서도 아이들은 태어나 뛰어 놀고, 부서진 자리에 새로운 집들은 들어서고.

0 댓글

목록

Page 4 / 4
제목 섬네일 날짜 조회 수

[미니, 세계를 날다] “이런 것이 삶이에요.”

| 현지에서
  2006-01-27 4285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제닌에서의 하루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 가운데도 가장 위쪽에 있는 도시 제닌을 찾았습니다. 2002년에 있었던 제닌 학살과 ‘아나의 아이들’이라는 영화 등을 통해 제닌은 저의 기억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던 곳이었습니다. 사진1 파괴된 건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는 가산 “며…

[미니, 세계를 날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말해 주세요

| 현지에서
  2006-01-21 4275

나블루스로 온 첫 날 오늘(1월18일)은 라말라에서 나블루스로 왔습니다. 나블루스로 오는 동안 3개의 체크 포인트(검문소)를 통과했고, 칼리드의 얘기에 따르면 이건 단지 늘 있는 체크 포인트일 뿐 언제든지 임시 체크 포인트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나블루스로 오는 길에 또 많은 점령촌을 보았습니다. “칼리드, 대부분 …

[미니, 세계를 날다] 저항하는 것 말고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 현지에서
  2006-01-21 4306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오랜만에 자카리아를 만난 날 자카리아는 한국에도 2번 왔었던 사람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글을 쓰고 있구요. 오늘은 자카리아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행 중에 환자가 생겼습니다. 미연이가 어제부터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더니 얼굴 한쪽에 염증이 생겼는지 아파서 잠을 잘 못 잤다…

[미니, 세계를 날다]남편이 출감한 1주일 뒤 다시 아들이 감옥으로...

| 현지에서
  2006-01-20 4320

한 집안이 겪은 점령 이야기 팔레스타인인들 가운데 이스라엘의 감옥에 갔다 왔던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깐 아미니 가족들은 너무 쉬운 일이라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리고 라에드가 자기 친구를 소개시켜 줘서 쉐켈의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쉐켈을 비롯해 그의 가족과 친척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 해 줬습…

[미니, 세계를 날다]생활 곳곳에 스며든 점령

| 현지에서
  2006-01-17 4297

헤브론에서 둘째 날 아부 아흐메드와 함께 헤브론 시내 구경(?)을 나섰습니다. 세르비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이스라엘의 점령입니다. 헤브론 안에는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올드 시티라는 지역이 있는데 지금은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의 집과 땅을 빼앗아 생긴 이스라엘 점령촌이 들…

[미니,세계를 날다] 가슴이 막혀서 눈물이 나던 날

| 현지에서
  2006-01-17 4295

차가운 현실과 따뜻한 사람들 팔레스타인에 온지 나흘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의 여행을 도와주고 있는 아마니와 그의 동생 라에드와 함께 헤브론으로 가기 위해 라말라에서 세르비스 택시를 탔습니다. 세르비스(service) 택시는 합승 택시쯤으로 생각하면 됩니다. 대부분 정원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가 특정 구간을 오가는 노…

[미니, 세계를 날다]우리는 콘베이어 벨트 위의 물건이 아니다

| 현지에서
  2006-01-15 4280

라말라 시내 중심부에 있는 거의 모든 공중전화가 고장이 나 있어서 어렵게 아마니와 통화를 하고 오늘(1월12일) 아침 9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아마니는 한국에 갔던 적이 있는 친구로 우리의 팔레스타인 여행을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아마니를 기다리는데 주변에 있던 팔레스타인 경찰들이 먼저 말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

[미니, 세계를 날다] 돌들은 아무 말이 없는데...

| 현지에서 1
  2006-01-13 4434

올드 시티에서 만난 이스라엘 군인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하니깐 좋다고 했다. 미니가 1월8일(한국시각) 에미레이트 항공의 비행기를 타고 한국을 출발해 요르단을 거쳐 팔레스타인으로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에서의 첫날밤을 보내고 10일, 함께 온 이들과 거리에 나섰습니다. 거리에서 먼저 …

제닌 가는 길.

| 현지에서
  2004-12-09 4293

사실 며칠 전부터 팔레스틴을 뜰 생각을 했다. 왜냐면 이_러_저_러 하여서. 그런데 못뜨고 애꿏은 짐만 자꾸 싸고 풀고 혼자 난리다. 어쨌거나 정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제닌행. 그 지역에서 활동한다는 친구 연락처 하나 달랑들고, 버스 갈아타기놀이와 버스에 사람 찰때까지 기다리기 놀이를 하는 기분으로 네시간 달…

헤브론에서 한글을

| 현지에서
  2004-12-09 4359

헤브론에서 한글을 보았다. 아.. 이건 거의 감동수준인데, 영어의 바다에서 괴로워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느낄수 없는 것이리라. 헤브론에 평화꾼(?)들과 함께 며칠을 보냈다. 그곳에서 뭔가 꼼지락 거리는 친구들이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땐 다들 피곤한 기색이 역력. 무언가를 많이 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못…

salam~

| 현지에서 4
  2004-12-03 4353

저는 그냥 여행자예요. 팔레스틴이요? 아는거 별로 없어요. 그냥 신문에서 텔레비전에서 봤죠. 다행히도 신문과 텔레비젼이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며 그걸로 먹고 산다는 건 알아서, 그들의 말을 믿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치우고 나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려고 별 노력하지도 않았죠. 그러다 여행에서 팔레스틴에 가면…

모하멧 동생이야기

| 현지에서
  2004-12-03 4300

헤브론에 다시가다. 죽음의 도시 같던 헤브론에 다시 왔다. 얼마전에 왔을땐 올드시티만 봐서인지, 정말 죽음의 도시 같다고 생각했는데 다시와서 다른 마을을 둘러보니까, 이곳도 사람사는 곳인지라 생기가 느껴진다. 동행한 사람들이 해대는 빠른영어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숙소 옆집에 사는 애가 놀러왔다. 자기네 집에 가…

벽속에 갇힌 무니라 아줌마네 집...

| 현지에서
  2004-12-03 4426

살렘알레이쿰~ 어설픈 영어로 어리버리 이 나라 저 나라 헤매고 다니는 중인 반다입니다. 요즘은 팔레스틴에서 헤매고 다니고 있습니다. 오늘은 qalqiliya에 있는 무니라 아줌마네 집에 다녀왔습니다. 아줌마네는 원래 비닐 하우스에서 화초를 가꿔서 파는 일을 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4년 전 이스라엘 군인들이 비닐하우스를 …

Board Links

Page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