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쓰기

예루살렘의 두 얼굴

냐옹, 2013-10-25 23:41:50

조회 수
30054
추천 수
0

지난번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서안지구에서 보냈었기에 이번에는 이스라엘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을 보고싶었다. 불법 정착촌을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않고, 구석구석 살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비었던 어느날 우리는 서예루살렘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해 예루살렘으로 오는 길에 차창밖에 비친 서예루살렘의 풍경들을 잠깐 보았기 때문에 대략 어떤 곳인지는 감을 잡고 있었다.


그렇게 도로 하나를 건너 우리는 일부러 큰 도로가 아닌 골목길을 택해 중심가로 향했다. "웰껌, 차이나, 차이나"라고 외쳐대던 길가의 상인들과 시끄러운 동예루살렘에 살짝 지쳐있었던 나로써는 한적한 골목에 숨통이 확 트이는 기분이었다. 누구 하나 이방인인 우리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았고, 예쁜 트레이닝복을 입고 조깅하는 아가씨, 강아지와 산책하는 노부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사로잡은 잘 보존된 오래된 건물들. 한적한 서유럽의 어느 작은 골목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갑자기 너무도 달라진 거리 풍경에 마치 다른 나라로 온듯 신기하게 주위를 둘러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니, 이건 내가 생각하고 스쳐지나가면서 본 이스라엘의 풍경과 사뭇 다르다!! 갑자기 관광객이 된 느낌이었다.


IMG_4376.jpg

[서예루살렘 이동 중 거리 풍경]


숨통이 트이는 것도 잠시, 어떻게 도로 하나를 두고 이렇게 풍경과 사람들이 다를 수 있을까 섬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찾기 어렵던 ATM도 곳곳에 즐비하게 비치되어 있었고, 거리의 골목골목엔 멋들어진 카페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이 생경한 풍경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왜 내 마음은 이렇게 불편할까.

예전에 만났던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팔레스타인에 가본적이 있냐고 물었더니, 어떻게 그렇게 위험한 곳에 갈 수 있냐며 자기는 30년간 살면서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며 토끼눈을 하고 나에게 반문했던 모습이 다시금 기억나면서, 어떻게 이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먹먹해졌다. 예전에는 이스라엘인들이 그냥 얄밉고 화가났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대중들이, 나라가 너무 미웠다. 그렇지만 모든 삶에는 그 나름대로의 정당한 논리의 규칙과 삶과 정치가 있지 않은가. 서예루살렘에서 나는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들의 일상을 머리로 가슴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내가 이스라엘에서 태어났다면 그들의 점령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IMG_4384.jpg IMG_4387.jpg 

[서예루살렘 골목의 카페]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비교하면 확실히 '리버럴'하다. 성소수자에 대한 관용, 여성들에 대한 시선, 심지어 동물권에 대한 이해도 있다.( 당연히 세계 여느나라처럼 각종의 차별은 만연해 있다.)사람들은 다양한 취미를 가졌고, 거리는 더 깨끗하고, 외국인들에게 추태의 눈빛을 보내지도 않는다. 이런 '자유주의'적이고 세련된? 국가가 어떻게 시오니즘을 받아들이며 팔레스타인에 대해선 눈도 꿈쩍하지 않는 것일까.


IMG_4378.jpg


그렇게 만감이 교차하는 가운데, 우리는 장총을 맨 앳된 소년을 볼 수 있었다. 총을 매고 거리를 활보하다니. 그간 군복을 입고 총을 매고 다니는 군인들은 수없이 보아왔지만 일반인이 이렇게 큰 총을 들고 다닌 것을 보는 것은 처음이라 매우 놀라웠다. 더 놀라운 점은 아무도 그를 이상하게 쳐다보지 않는다는 것. 이스라엘은 개인의 총기류 소유가 합법적인 국가이다. 왜냐하면 늘상 팔레스타인인들의 테러?에 노출되어 스스로를 보호해야하기 때문이다.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이들은 정말 팔레스타인을 적이며 경계대상으로 삼고 있는구나..라고 몸으로 느낀 하루였다. 서예루살렘에 온지 1시간도 안되서 나는 다시 시끌벅적한 동예루살렘으로 가고싶어졌다!  



첨부
냐옹

0 댓글

목록

Page 1 / 4
제목 섬네일 날짜 조회 수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8-11

| 현지에서 1
  • file
섬네일 2015-01-16 4917

1월8일 오후2시 아침까지만 해도 비하고 진눈깨비가 오더니 지금은 다행히 조금 나아졌다. 비가 간간히 오긴 하지만 그래도 어제보다는 훨씬 낫다. 게다가 어제 내린 우박들도 다행히 하나도 얼지 않고 다 녹아버려서 미끄러운 길도 없다. 부린에 가기 위해 가게 앞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스라엘 군 지프가 계속 지나간…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5-1.7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5-01-12 4492

2015년1월5일 오전10시50분 엘피와 클레어와 함께 아크라바를 방문하기로 했다. 다시 후와라 팀이 생겼다. 아무튼 조직이라는 것은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인가 보다. 무라드 씨와 같이 아크라바로 향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저번 주 금요일에 점령민이 와서 총을 쏴대며 올리브 나무를 공격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충돌이 일자…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12.30-1.01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5-01-08 4549

12월30일 오후12시30분 아침에 압달라에게서 후와라 인근 마을인 베이타에서 어제 청년 2명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은 장례식과 집회가 있을 것이니 따로 계획이 없으면 방문해 보라고 해서 와봤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라 도보로 이동했다. 거의 도착할 때 쯤에 집회장소가 어디인지 몰라 동네 …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2.20-26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4-12-29 4658

12월20일오전9시 어제 이것저것 생각하다보니 늦게 잤다. 근데 아침에 패트릭이 급하게 나를 깨웠다. 잠결에 대충 들어보니 오늘 그것도 지금 아크라바에서 올리브나무 심기를 하는데 점령민들이 방해할 수도 있으니 와달라고 요청이 왔다고 한다. 대충 씻고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오전9시20분 아크라바에 가기위해 편의점에…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2.17-19

| 현지에서
  2014-12-22 4611

12월17일오전6시20분 아침에 스콧 씨가 깨우는 소리에 일어났다. 어우 졸려 근데 지금 전기가 나갔단다... 하하 이것 참 뭐 어차피 오늘은 하루종일 집을 비우니 상관없지만 아무튼 스콧 씨랑 간단하게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출발했다. 어제 삶아 놓은 계란도 챙기고 아웅 잠이 덜 깻다... 오전7시25분 나불루스에 도착했다. 여…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2.14-16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4-12-19 4747

12월14일 오전8시 아침에 일어나보니 스콧 씨가 남긴 쪽지가 보인다. 베들레헴에 가니 문제 생기면 전화~ ㅋㅋ 게다가 패트릭도 크리스마스 때 돌아온단다. 하하 아 그리고 사진이 드디어 보내졌다. 아직 남은 것들이 많지만... 오늘은 연재할 글들을 써봐야 겠다. 오후4시30분 결혼식을 하는 지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난다. …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2.8-10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4-12-14 4719

12월8일 오후2시40분 음...원래 만나기로 한 사람의 약속이 계속 미뤄져서 결국 내일 보기로 했다... 도저히 하는일 없이 있을수가 없어서 지금은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이라도 한바퀴 돌러 나간다. 내일도 만약 이런식이면 차라리 다른 곳들을 그냥 방문해봐야겠다. 오후7시 어제의 일지가 제일 짧을 줄 알았는데 오늘이 제일 …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2.5-7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4-12-10 5001

12월5일 오전8시30분 아침에 좀 일찍 일어났는데 오늘은 정전인가 보다. 지금은 스콧 씨와 주변을 돌아다니는 중이다. 숙소 뒤에 있는 언덕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중인데 여기는 드문드문 낮은 언덕들이 있어서 쉽게 산 정상에 올라온 기분이 든다. 오전10시50분 쿠프리카툼에 도착했다. 오늘도 군인은 벌써 와있고 서로 큰소리…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1.29-12.04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4-12-08 4804

11월29일오전9시35분 동예루살렘에서 작년에 촬영한 가족을 보러 가는 중이다. 후와라 숙소에서 체크포인트까지 만 가주는 택시를 타고 체크 포인트에서 내렸다. 기락하고 둘이서 허허 여긴 어디인가.. 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분이 우리에게 ‘라말라?’ 물어보시기에 바로 예스 예스 하니까 어떤 남성분이 히치하이킹한 차에 같…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1.14-28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4-12-04 5447

11월14일 오전9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쉬는 중이다. 집회는 점심 쯤에 기도가 끝나면 시작이니 시간이 좀 남는다. 그래서 우리는 저번 주에 만났던 가족의 집에 방문하기위해 집회하는 장소로 향했다. 오전11시10분 집회가 있을 도로에 나가보니 벌써부터 타이어가 타고 있다. 몇몇의 섀밥들이 몰려 있는게 보이고 양쪽…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1.11-13

| 현지에서
  2014-11-24 4936

11월11일 어젯밤에 술 덕에 늦잠을 자서 오전 10시나 되어서야 일어났다. 다행히 숙취는 없었다.(근데 해장국 같은 얼큰한 국물이 땡겼다. 라면스프..) **씨가 사다주신 팔라페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야핑님과 선생님이 계신 파디씨네 집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학교가 벌써 파했는지 자기 몸만한 책가방을 메고 있는 아담을 …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1.8-9

| 현지에서
  2014-11-17 5256

11월8일 아침 7시 30분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부마싸르 싸케르씨네 올리브수확을 하러갔다. 밤새 분 바람때문에 올리브가 많이 떨어져서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떨어진 올리브들을 주웠다. 다행히 올리브는 단단해서 터진 것도 별로 없었고 간간히 불어주는 바람 덕에 덥지 않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신부님과 나 야핑님과 …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1.5-11.7

| 현지에서
  2014-11-13 5558

11월5일 나불루스에서의 아침이다. 근 3일 만에 제대로 그것도 침대에서 잠을 잤지만 밤새 춥다보니 잃어버린 자켓 생각에 잠을 설쳤다. 할머니께 좋은 자켓을 하나 사드리고 나는 여기서 입을 용으로 하나 사던지 해야겠다. 아침식사로 야핑과 선생님은 전날 남긴 샌드위치로, 나와 신부님은 시장에서 파는 팔라페샌드위치로 …

팔레스타인에서의 일지 11.02-04

| 현지에서 1
  2014-11-12 5837

팔연대 멤버 중 기린과 야핑이 팔레스타인으로 떠나서 열심히 현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기린님이 매일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전달해주기로 하셨어요. 기린님을 대신해서 올립니다 ----------------------- 2014년11월2일 오후 7시30분 드디어 간다. 지하철타고 가는 중인데 이제서야 조금씩 실감이 나고 가슴한구석이 …

예루살렘의 두 얼굴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3-10-25 30054

지난번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 대부분의 시간을 서안지구에서 보냈었기에 이번에는 이스라엘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을 보고싶었다. 불법 정착촌을 가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닿지 않않고, 구석구석 살필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시간이 비었던 어느날 우리는 서예루살렘을 살펴보기로 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에 도착해 …

불법정착촌을 잇는 베이트사파파 고속도로를 가다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3-10-03 14378

지금 머물고 있는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에서 오랜기간동안 활동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활동가 잉그리드와 그의 남편 팔레스타인인 무함마드의 집이다. 오늘은 잉그리드가 동예루살렘의 고속도로 건설(불법 정착촌들을 이어주기 위함)과 그로 인해 동예루살렘(팔레스타인인들이 거주)이 어떻게 파편화되고 있는지 한 눈에 볼 …

욤키푸르에도 검문소는 계속된다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3-09-24 12325

9월 13일부터 14일까지 유대교의 욤 키푸르 휴일이다. 욤 키푸르는 구약 성서의 속죄일에 근거한 것이며, 속죄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못하며, 해가 지기 전 일찍 식사를 끝내고 촛불을 키며 해가 지면 단식에 들어간다, 집에서는 전기도 쓰지 않으며, 심지어 어떤 곳은 엘레베이터도 운행하지 않는 등 그야 말로 유대인들은 거…

활동가들은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 중!!

| 현지에서
  • file
섬네일 2013-09-23 11640

도합< 삼 인의 활동가가 팔레스타인 현지 활동을 위해 떠났습니다. 무사히 다들 잘 도착해서 미친듯이 활동하고 있어요!! 그 중 일인이 일지같은 걸 적기로 했는데, 일지까지는 무리일 것 같고;; ㅋ 암튼 시리즈를 시작하겠습니다!! 9월13일 팔레스타인에 도착. 오는 비행기 안에는 온통 군복무(이스라엘은 의무적으로 17세~20…

팔레스타인에 가실 때는요.

| 현지에서
섬네일 2012-03-28 11483

뭐부터 시작할까 고민하다가 가볍게 팔레스타인 가는 분들께 드리는 당부말씀으로 말문(?)을 엽니다. 팔레스타인에 갈 때 보안 문제를 조심해야 하는데요. 두 번째라서 저는 나름대로 더 조심했습니다만.. 돌아다니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제 옷차림이었어요. 무채색 옷과 가방을...; 예전에 현지 활동 단체에 결합하면…

친절한 사람들이 사기치는 이유? 팔레스타인 교통 문제

| 현지에서 3
  • file
섬네일 2012-02-14 14136

안녕하세요? 전할 소식이 많은데 만사가 귀찮아서...; 서핑하고 뉴스 읽고... 하는 일은 많지 않은데 괜히 바쁘네요? ㅎ 제가 점령과 식민화의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교통 수단도 굉장히 문제가 많고 교통비가 많이 든다며 교통비를 지원받고 싶다고 후원함을 띄웠는데요. 교통... 진짜 짜증나요...; 굳이 따지자면 교통비를 많…

Board Links

Page Navig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