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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 팔레스타인 저항세력들이 하마스가 조직한 반 이스라엘 집회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중동지역의 가장 민감한 이슈로 부상한
레바논의 버림 받은 팔레스타인 난민들


2006-07-24 오후 2:05:35  ⓒ르몽드 코리아

  이스라엘 군은 작년 여름 전격 철수한 가자지구에 연일 폭격을 가하고 있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데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팔레스타인 민족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를 풀지 않고 있다.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진 수백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오늘도 난민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레바논의 난민촌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경우, 비록 최근에 상황이 다소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

지난 5월 27일, 레바논 남부 중심도시 사이다에서 팔레스타인 이슬람 지하드 지도자 마흐무드 알-마주브와 그의 형제에 대한 테러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현재 레바논이 처해 있는 불안정한 정세를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게다가 다음날 이스라엘 군은 베카 지역과 베이루트 인근 국경지대에 대대적인 폭격을 감행했다.

이 폭격은 이스라엘 군이 2000년 5월 25일 레바논에서 철수한 이래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규모였다. 헤즈볼라와 아흐메드 지브릴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총사령부가 지휘한 것으로 추정되는 로켓포 발사에 대한 보복성 공격이었다. 로켓포 발사 사건으로 인해,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 민족의 무장해제를 둘러싼 논쟁이 재개되고 있다. 역사에서 잊혀지고 주요 협상 테이블에서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다수가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이 팔레스타인 민족이 다시금 국제정치 무대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팔레스타인 민족은 이번 기회를 통해 결코 포기한 적이 없는 귀환권을 주장하려 한다.

  "팔레스타인 난민촌, 특히 아인 알힐와흐는 레바논 및 외국 언론에 의해 범죄자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은둔하고 있는 ‘무법지대’로 소개되고 있어요. 하지만 난민촌은 곧 우리 자신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과 역사에 애착을 갖고 있는 4만 5천여 명의 난민촌 주민들일뿐 통제불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 이들은 기껏해야 200여명에 불과하고, 그들 또한 불안정한 삶과 막다른 정치적 상황의 희생양일 뿐입니다."  팔레스타인 난민인 카다 씨가 격앙된 어조로 말한다. 그녀는 사이다 인근에 위치한 레바논 최대 규모의 알일와흐 난민촌 주민이었다. 그녀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기가 살고 있는 난민촌이 긴장과 무력충돌 때문에 초토화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그녀는 결국 단란한 가족생활을 포기하고 난민촌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남편이 난민촌에 남아 있기 때문에, 주말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난민촌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무력충돌보다 더욱 그녀를 진절머리 나게 하는 것은 아인 알힐와흐 난민촌의 열악한 경제상황, 좁고 더러운 골목길과 누더기 같은 집들이 푹푹 풍기는 빈곤의 악취이다. 이는 아인 알힐와흐의 난민들을 이슬람 근본주의자로 만드는 훌륭한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그 대원들을 강제 추방한 것은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는 일대 변화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당시 PLO는 레바논에 거주하는 약 65%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고, 보건 및 교육시설에 대한 재정지원을 담당하면서 레바논 빈곤층에게도 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 뒤 PLO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외교노력을 집중함에 따라,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1993년 오슬로협정에서 ‘잊혀진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유럽국가들의 원조기금은 모두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돌아갔고,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제사업기구(UNWRA)와 각종 유엔 기구 및 국제 비정부기구가 레바논에 지원하던 예산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결국, 전쟁과 경제적 난관의 직격탄을 맞은 레바논의 난민촌들은 외부와 단절된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이슬람 지하드나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 저항운동 단체들은 물질적 궁핍에 시달리는 최하위 극빈층으로 눈을 돌려 그들에게 너무나도 절실했던 물질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마스는 레바논 정부가 1992년 12월 친 하마스 성향의 팔레스타인 난민 415명을 남부 레바논으로 강제 이주시킨 데서 폭발한 난민들의 원성을 적절하게 이용해 먹었고, 또한 이스라엘의 “초법적인 암살” 정책으로 촉발된 난민들의 분노를 이용해서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다. 특히, 2004년 3월과 4월에 각각 세이크 야신과 압델라지즈 알-란티시를 암살한 것은 대표적인 예이다. 이들의 초상화는 아직도 거리 곳곳에 걸려 있다. 지난 1월 실시된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하마스의 입지는 레바논에서도 한층 넓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해방인민전선 성향의 움 파디 씨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선거 결과에 놀라면서 “부패에 대항하고 귀환권을 포함해서 팔레스타인 민족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흡족해했다. 난민촌이 정치활동과 유배지 내 팔레스타인 사회건설을 상징하던 시절에, 그녀는 아인 알힐와흐 난민촌에서 아이들을 낳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제 그녀에게도 지금의 알힐와흐는 옛날의 알힐와흐가 아니다. “오늘날 여러 정파들은 국민들을 볼모로 삼아 서로 보복하고 있어요. 주기적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모두들 두려움에 떨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곳을 떠나려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난민촌은 팔레스타인 땅으로의 귀환을 기다리며 우리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상징하는 집단공간이니까요". 지난 5월 1일에는 파타당 당원이 아스바트 알-안사르(지지자들의 연맹, 알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추정되는 살라피스트 그룹) 소속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의해 피살됐다. 그렇지 않아도 넘쳐나는 희생자 명단에 또 한 사람의 이름이 추가된 것이다. 이러한 보복행위는 정치행위에 그치는 게 아니라 범죄행위에 해당하고, 내부갈등을 넘어선 긴장조성 전략의 일환으로 몇몇 비밀 정보조직에 의해 자행되고 있으며 난민촌의 상황을 더욱 혼미하게 만들고 있다. 아인 알힐와흐는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큰 난민촌으로 유배중인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사실상의 수도라 할 수 있을 만큼 모든 팔레스타인 정당들이 중심가에 포진하고 있다.

  "지금은 상황이 매우 민감합니다." 아인 알힐와흐 난민촌의 대표였던 아부 알리 하산의 말이다. 그는 현재 베이루트 내 기독교인 다수 거주지역의 소규모 난민촌인 마르 엘리아스에서 레바논 정당들과의 교류를 담당하고 있다. “프랑스와 미국의 주도하에 지난 2004년 12월 채택된 유엔안보리 결의안 1559호가 강요하는 팔레스타인 저항단체들의 무장해제 문제는 레바논의 주요 정치 현안 가운데 하나에 속합니다. 레바논 정부는 난민촌 외부에 주둔하고 있는 기지들의 무장해제 및 난민촌 내 무기에 관한 규제문제 협상을 담당할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우리는 공동 대표단을 발족하고, 이 문제가 안전이라는 한 가지 관점에서만 다루어지지 말고 우리의 정치적 권리를 신장시키고 난민촌 내 생활환경 개선이라는 결과를 도출해내도록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대표부가 베이루트 남부 외각의 지나흐에 다시 문을 열게 된 것은 하산 씨에 따르면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무력을 사용해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베카고원에 흩어져 있는 약 12개의 기지와 베이루트 남쪽 15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나흐메 해안 마을에 팔레스타인군이 주둔하고 있어 특히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은 지난 2005년 10월 파리를 방문해서 레바논에 거주하는 모든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반드시 “법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선언했는데, 이 말은 당사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레바논 신문들은 팔레스타인 무장요원들이 시리아로부터 동부 베카고원 쪽으로 침투한다고 줄곧 보도하고 있다. 그러자 레바논 군은 시리아와 레바논 국경 사이에 있는 약 40여 곳의 불법침투 지점들을 봉쇄했을 뿐만 아니라, 다마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친시리아 성향 조직에 소속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활동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 친 시리아 조직으로는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총사령부, 아부 무사가 이끄는 파타당의 한 분파인 파타-인티파다, 시리아 집권당인 바스당의 팔레스타인 계열의 알-사이카 등이 있다.

  "우리가 이스라엘에 맞서 무장 저항운동을 펼쳤고 여전히 활발한 활동과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평화의 걸림돌로 여겨지고 있는 겁니다." 레바논 북부 트리폴리 인근의 베다위 난민촌 주민위원회 대표인 나빌 씨의 말이다. 집들이 그나마도 덜 허름하고 새로 보수한 도로와 운하가 있는데다가 분쟁지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베다위 난민촌은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나빌 씨에게는 전쟁의 위협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아무런 제재도 당하지 않은 채 남에서 북으로 북에서 남으로 레바논 상공을 주기적으로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브라와 샤틸라를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다국적군의 보호 하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집단 학살되는 사건을 목격했습니다. 난민촌에 무기가 필요한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무기 문제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유배생활 환경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제사업기구(UNRWA)에 따르면, 레바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2006년 3월 현재 약 404,000명에 달하며, 이중 22만 명이 레바논 각지에 분산되어 있는 12개의 난민촌에서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 12개 난민촌을 살펴보면, 베이루트의 마르 엘리아스, 보르즈 엘 바라즈네흐, 사브라, 샤틸라, 드바이예, 남부의 사이다 인근에 위치한 아인 알힐와흐와 미에 미에, 티르 인근의 엘 부스, 라쉬디예, 보리 엘 셰말헤, 북부 트리폴리의 나르 엘 바레드와 베다위, 베카지역의 와우엘 난민촌이다. 여기에 팔레스타인난민구제사업기구에 의해 공식 인정을 받지 못해 전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소규모 불법 난민 거주지들을 "통합"한 곳들도 잊지 말아야 한다. 레바논 군은 이들 난민촌에 대해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약 10만 명을 수용하고 있는 남부지역 4개 난민촌에서는 모든 출입이 통제되고 있고, 출입을 위해서는 허가증 취득을 요구하는 등 압력의 수위가 특히 높은 편이다. 남부에서는 파타당이 여전히 가장 강력한 조직인데 반해, 베이루트와 북부 레바논 및 베카 지역의 난민촌에서는 친시리아 성향의 조직들이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고, 파타당과 하마스 측에 따르면 도처에서 이슬람 원리주의 단체들의 입지가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팔레스타인난민구제사업기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난민의 60%가 빈곤의 한계치 이하 수준에서 살고 있으며 실업률은 70%에 육박한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들은 난민촌 외부에서는 약 72개 직종에 종사할 수 없고, 난민촌 내로 건설 자재를 반입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또한 레바논 비자를 취득하지 않고서는 레바논 영토를 떠나거나 되돌아 올 수 없고, 비자 발급에는 6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2005년 6월, 헤즈볼라 성향의 트라드 하마데 레바논 노동부 장관은 레바논 영토에서 태어나고 레바논 내무부 명부에 등록된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대해 직업활동 제한을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의학, 법률, 건축 등의 분야를 전공한 팔레스타인 학위취득자들은 여전히 직업의 제약을 받아야 한다. 한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레바논에서 주택 및 부동산을 구매할 수 없도록 규정함으써 그야말로 심각한 법적 혼란, 특히 유산 및 상속과 관련해서 심각한 혼란을 초래했던 2001년 사법개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PLO의 팔레스타인 난민업무 담당국장인 사미라 살라흐 씨는 레바논 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일련의 조치들이 진전을 보인 것은 사실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레바논 태생의 팔레스타인 난민 중 노동허가증을 소지한 사람에게 노동권을 허용한다고 명시한 조치들은 이미 1995년에 공표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허가증 취득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뿐만 아니라, 레바논 장관의 제안에는 사회보장제도와 각종 보험에 가입할 권리는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미라 살라흐 씨는 레바논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권리와 유엔총회 결의안 194호에 명시된 귀환권을 쟁취하기 위한 캠페인의 공동집행위원장이기도 하다.  2005년 4월 초에 시작된 이 캠페인은 25개 팔레스타인 단체,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 PLO내 팔레스타인 난민 업무 담당부서 및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의 회원들이 참여해서 결성한 연대회의가 주관하고 있다. 이 캠페인을 통해서, 팔레스타인 사회 내에서 진지한 토론회와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레바논 정부에 정치적 압력을 넣기 위해 레바논 국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한다. "시민권에서 귀환권 쟁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레바논 국민들과 함께 레바논 정부의 팔레스타인 난민 이주정책과 귀화정책에 반대한다"라는 슬로건 아래, 이 캠페인은 노동권, 개인재산 소유권, 단체결성권, 신변안전권을 4가지 주요 요구사항으로 내걸고 있다. 이러한 요구사항들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에도 지금까지 대답 없는 메아리로 남아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국가 창설당시 유배지로 내몰렸던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현재 약 4백만 명에 달하며, 이는 팔레스타인 공동체 전체의 약 60%에 해당한다. 현재 팔레스타인 난민의 90%가 팔레스타인 영토와 인접 아랍국가들에서 살고 있다. 이제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레바논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중동지역 차원에서도 가장 민감한 정치 쟁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스라엘-아랍간 분쟁 문제가 난민 문제의 해결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할 때이다.


마리나 다 실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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