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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손 액션, 다큐에 가까운 리얼 팔레스타인 영화 '오마르'

타렉? 암자르? 설마 나디아? 아, 도대체 누구지?

영 화를 보며 도대체 누가 첩자인 거야, 라며 눈에 잔뜩 준 힘을 풀 수가 없었다. 이 영화는 첩자와 첩보전을 다루며 시원하게 빵빵 터지는 액션영화는 아니다. 추격이나 총 쏘는 장면이 등장하지만 거의 맨손 액션 영화다. 말하자면 다큐에 가까운 리얼이다. 영화는 치밀하고 철저하게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그리고 있다. 팔레스타인 사람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외부에 말하기 꺼려하는 주제인 팔레스타인 첩자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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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마르> 포스터

 

십년 전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네가 본 그대로를 너희 나라에 가서 전해 달라”였다. 이스라엘 편향적 뉴스만 세계에 보도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머금은 말이었다. 두 번째로 많이 들은 말은 “아쉬랍 차이”였다. 와서 차 한 잔 마시라는 인사다. 처음엔 내가 외국인이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시골 사는 친구가 올리브를 수확하고 택시로 옮기고 나서, 그 택시 기사에게도 “아쉬랍 차이”라고 말하는 걸 들었다. 시골이기 때문에 더욱 잘 남아있는 이슬람의 환대 문화다. 이슬람은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도 일단 환대하고 본다. 특히 집에 찾아온 손님은 천사처럼 접대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팔레스타인 노인들에게 여러 번 들었다. 심지어 그 오랜 점령으로 먹을 것을 비롯해 어떤 자원도 풍족하지 않고, 이스라엘에 의해 집이 파괴된 이들이 허다한데도 거리에서 노숙인을 단 한 번도 본적이 없다. 한 친구 말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의 훌륭한 복지제도는 이웃과 마을이라는 것이다. 모두 가난하지만 마을에서 함께 십시일반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본다는 말이었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가보자. 팔레스타인 청년 오마르는 사랑하는 나디아를 만나기 위해 그리고 반 이스라엘 투쟁 작전을 위해 매일 8m 고립장벽을 넘는다. 밧줄 하나에 의존해 빗발치는 이스라엘 총알을 피해 장벽을 넘는 게 쉽지 않지만, 그곳을 오가며 오마르는 미래를 준비한다. 나디아 가족들 몰래 커피 잔 밑으로 연애편지를 주고받기도 하고 죽마고우인 타렉, 암자르와 함께 반 이스라엘 투쟁 작전을 준비한다. 오마르와 나디아는 점차 미래를 약속할 만큼 서로에 대한 마음의 깊이를 확인하게 되고, 오마르는 타렉, 암자르와 함께 드디어 오랫동안 준비해온 작전을 실행한다. 작전은 계획대로 성공하고, 셋은 감쪽같이 현장에서 사라진다. 그런데 어디서 정보가 센 건지 며칠 뒤 이스라엘 경찰이 들이 닥치고 결국 오마르가 연행된다. 이스라엘 경찰은 투쟁 작전과 가담자를 다 알고 있고, 심지어 오마르와 나디아 단둘만 알던 미래의 신혼여행지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있다. 오마르는 혼란스러워하고, 나는 누가 첩자인지 인물들이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의심의 눈으로 보는데, 영화 속 인물들은 오마르가 첩자인 게 아니냐며 의심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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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마르> 스틸컷

 

이스라엘 경찰은 오마르에게 평생 감옥에 있고 싶지 않으면, 첩자가 되라며 지독한 고문을 한다. 신념과 의리를 지키던 오마르는 평생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고문의 고통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려던 팔레스타인 사회가 자신을 향해 첩자라며 쑤근 거리고 공격하는 바로 그 순간. 오마르는 존재 할 곳을 잃고 첩자가 되길 결심한다. 영화는 인물들이 서로를 의심 하는 순간 마다 새로운 사건이 터진다. 매복 중에 타렉이 이스라엘 경찰이 늦는다며 오마르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 던 순간, 나디아가 오마르에게 첩자가 아니라는 확신을 달라던 순간, 오마르가 나디아에게 다른 사람이 생긴 게 아니냐고 의심하던 순간. 그 순간마다 그들의 현실은 점점 더 나쁘게 흘러간다.

오마르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믿는 이웃들에게 첩자라고 낙인찍혀 공격당하고, 심지어 죽마고우 타렉에게도 의심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먼저 자신의 죽마고우들을 향해 첩자라는 의심을 품지 않았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 자신 또한 확인 되지 않은 이야기를 믿고 나디아를 의심한 주체였음을 깨닫게 되고, 말한다. “우리는 거짓을 믿었어” 오마르와 나디아가 정말 믿었던 것은 뭐였을까, 이스라엘 점령에도 불구하고 소박한 행복은 허용 될 것 이라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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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마르> 스틸컷

 

몇 년 전 다시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친구가 이곳에서는 3명이 모여 있으면 2명이 첩자고, 2명이 있으면 1명, 1명이 있으면 건물 벽이 첩자라고 말하며 쓴 웃음을 짓는 걸 보았다. 팔레스타인에서 여전히 “아쉬랍 차이”를 자주 들을 수 있었지만, 서로에 대한 의심과 공포로 환대와 돌봄의 공동체가 파괴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며칠 뒤 나는 검문소(check point)를 통과하다가 가방에서 미처 숨기지 못한 팔레스타인 국기 모양 열쇠고리와 몇 가지 아랍어 자료를 들켰다. 이스라엘 군인은 내게 어떤 문을 가리키며, 들어가라고 했다. 내가 들어가자 문은 밖에서 잠겼다. 두 세평 남짓한 방은 텅 비어 있었고, 방을 서성거리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 보니, 철제 그물이 쳐진 천장엔 군복을 입은 남자가 F16같은 장총을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순간 멍해졌는지 눈을 피했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선명한건 공포와 불쾌감으로 몸이 굳어졌었다는 것뿐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학교를 가거나 병원을 가기 위해 수시로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이스라엘 군인은 아무런 이유 없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벽에 세워놓고 한없이 서 있게 하거나, 남자의 경우는 손을 머리에 얹게 한 뒤 조롱하고 괴롭히는 일이 허다하다. 상대가 어린이나 청소년이더라도 명령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총을 겨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집은 수시로 파괴되고, 하늘엔  이스라엘 무인 정찰기가 윙윙거리며 떠다닌다. 물론 지난여름 가자지구와 같은 대량 학살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인 민간인 학살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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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마르> 스틸컷

 

팔레스타인 현실에 관심을 기울여본 이들은 한번쯤 "도대체 대안이 안보여"라는 말을 한숨과 함께 내 뱉어본 적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여름 있었던 EBS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에 대한 보이콧운동이나 이스라엘에 대한 제제 운동인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등 하고 싶은 이야기 많지만, 지면 관계도 있고 그런 행동 보다 더욱 쉽고 소중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얼마 전 <씨네21> 칼럼에서 정희진 선생님은 ‘(약자의 고통을)알아주는 것부터 그 시작’이라며, 알아주는 그 마음이 모이면 고통이 성장의 자원, 역사가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네가 본 그대로를 전해 달라’고 했던 것은 장기 점령으로 생존이 위협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팔레스타인의 삶은 가려진채 무장 저항(소위 테러리즘)만이 세계뉴스를 타는 것에 대한 억울함 이었을 게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가 ‘분쟁’으로 표현되어 두 주체간의 갈등으로 보여 짐으로써, 일방적 점령이라는 진실이 삭제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 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계시민으로서 학살과 점령에 방관하지 않고, 이곳에서 연대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은 팔레스타인의 현실과 통증에 대한 ‘알아줌’ 이다.

하니 아부 아자드 감독의 영화 <오마르>가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또한 하니 아부 아자드 감독은 팔레스타인 현실에 대한 여러 빼어난 작품으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포드차 통행>, <라나의 결혼>등 여러 작품이 국내 미개봉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여름 가자학살에 마음 아파했던 사람들 중 배급사 관계자가 있다면, 좋은 연대의 기회가 있는 셈이다. 그 ‘먼 곳’의 현실에 마음 아파할 뿐이었는데, 우리가 영화를 보고 그 현실을 ‘알아줌’ 만으로도 연대가 된다니 이 얼마나 쉽고 놀라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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