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샤디의 동생-한국을 오고 싶어 했다
터키, 시리아, 요르단을 거쳐 이스라엘을 들어가게 됐다.
국경에서부터 이스라엘과 주변국과의 관계를 느낄 수가 있었다. 시리아 갔다왔다는 이유로 국경에서 4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비자는 1개월짜리를 주었다. 영란언니는 짐 수색까지 당해야 했다. 물론 일상적인 일이라고 하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영란언니는 상당히 기분 나빠하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내가 이스라엘에 대한 첫인상에 엄청난 공헌을 하셨던 분인데 그 본인이 이런 일을 직접 당했으니...
그 두 분은 내가 키부츠 가는 데에 열심히 반대하신 분들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왜 이스라엘을 위해서 일을 하냐고 팔레스타인을 위해서 일을 하라고.
그래서 난 이스라엘에 전과는 다른 목적을 갖고 왔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내가 그다지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라서 그 노력은 실패를 했지만 그래도 얻는 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두 분들을 이집트로 보내고 첨으로 혼자 팔레스타인, 헤브론이란 곳을 갔다. 그 분들이랑 같이 있었을 땐 그냥 예루살렘을 돌고 있었다. 여행이 점점 길어지다 보니 어딜 돌아다닌다는 것 보단 쉬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그리고 그 분들을 데리고 팔레스타인을 가긴 좀 그랬다. 왜냐면 그 쪽은 위험하다고 그 당시 알고 있었으니까. 그 분들이 이집트를 가고 나서 이메일로 항상 말했다. 위험한곳은 가지 말라고. 특히 가자지역은.
가자지역을 특히나 가고 싶었지만 그 곳은 그 당시 외국인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 위험했으므로.
내가 이스라엘을 들어가기 얼마 전 이스라엘에선 가자지역의 유대인들을 철수 시켰다. 세계의 이목엔 그들이 팔레스타인 평화에 관심이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막은 달랐다. 유대인 철수 이후 그 곳은 곧 공습직전이란 소문이 나돌았고 불안한 가자내 팔레스타인인들은 외국인들을 납치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일본인 사진작가 한 분도 납치당할 뻔 하다가 도망쳐 나오셨다.
내가 팔레스타인을 가게 된 이유는 딱 한가지였다. 내가 자원봉사로 일할 수 있을만한 NGO를 찾는 거였다. 그래서 일단 무작정 헤브론(Hebron)이란 델 가게 됐다. 혼자 간 나는 그 도시를 돌아다니면서 건물을 찬찬히 봤다. 어떤 NGO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서 어떤 NGO를 소개 받았는데 그건 농업에 관련된 곳이었다. 흥미가 별로 없는 나는 그 곳을 그냥 나왔다. 그 다음에 또 헤브론을 갔다. 이번엔 다른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예루살렘에서 봤던 어떤 NGO사람을 봐서 쫓아갔다. 그리곤 NGO 자원봉사 일을 구한다고 말하곤 어떤 의료관계NGO를 소개받고 갔다. 그 곳은 팔레스타인 계열 NGO였다. 거기에서 Shardi란 사람을 알게 됐다. 겨우 스무 살 된 사람인데 액면가는 서른이다. 나랑 동갑일줄 알았다. 나중에 그 사람의 사정을 알게 된 후 그 사람이 다르게 보였다.
그 사람은 그 나이에 가장이었다. 아버지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서 부러진 다리가 당뇨병 때문에 제대로 낳질 않았던 것이다. 그 아버지는 계속 집에서 쉬는 것 같았고 샤디가 일을 하고 그리고 공부도 했다. 이 사람은 아직 일하고 있는 단체에서 핵심 인물은 아니었지만 자기의 소신이 확실했고 그 소신을 잘 표현할 줄 알았고 그 소신대로 행동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보다 열 살이나 많고, 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이 배우고, 그 사람보다 가진 게 더 많다고 할 수 있는 내가 그 사람 앞에서 초라해졌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었다. 그 사람보다 학교를 더 많이 다녔다고 그 사람보다 나은 게 도대체 뭐가 있단 말인가? 내가 내 가족을 책임질 수가 있나?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그 사람만큼 소신을 가지고 있나? 그리고 그 사람만큼 내 주변 모든 것을 자신 있어 하나?
아무것도 없다. 그 사람과 비교를 하면 내가 가진 거라곤 그 사람보다 더 좋은 물건을 몇 가지 가지고 있는 거고 부모 잘 만나서 내가 하고픈 거 내 맘대로 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최대한 잘 활용하고 있고 아니 그 이상 활용하고 있다.
그냥 환경적인 걸 봤을 때, 그는 가진 거 없고, 부모 아프고 형제 많고, 덜 배우고, 가난한, 소위 최대 악조건의 남자이다. 그렇지만 샤디는 과연 그런것에 연연하고 있을까? 나이는 어려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나이고,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앞으로 더욱더 나아가서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것 이다. 조금만 더 배울 수 있다면 샤디는 날개를 달게 될 것 이다. 그것을 깨닫고 좀 더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NGO 활동- 어린이 빈혈검사하는중>
나중에 그 NGO일을 알아보기 위해 헤브론에 며칠을 머물러야 했는데 그때 샤디가 구광군과-터키에서 만났던 한국인인데 이스라엘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나중에 헤브론을 동행했다- 나를 자신의 집에 초대해 구광군과 3일을 샤디의 집에 머물게 됐다. 팔레스타인 가정에 머물게 된다는 게 나를 살짝 흥분시켰다. 여행 중에 현지인 집에 자거나 현지인집에서 무엇을 얻어먹거나 하는 건 그 여행에서 큰 추억이 된다.
그날 예루살렘과 헤브론은 비가 엄청 내렸다. 구광군과 난 짐을 싸서 헤브론으로 향했다. 운동화가 온통 젖은 채로 저녁때 쯤 헤브론에 도착했는데 샤디가 우리를 마중 나왔고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첨에 구광군과 그 집을 봤을 때 충격 그 자체였다. 우리를 초대 했을 때 우린 그렇게 생각했다. 뭔가 내새울게 조금이라도 있기 때문에 우리를 초대했을 거라고. 우리의 상식으로 생각했을 때 창피할 정도라면 절대로 초대하질 않았을 꺼라고. 그런데 .샤디의 집은, 내가 샤디였다면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였다.
집은 창고를 개조한 듯 했고 샤디의 방이란 건 창고의 입구에 해당했다. 거긴 샤디의 방인 동시에 거실이기도 했다. 너무 추워서 입에선 김이 나왔다. 손님이 왔다고 난로를 피워줬다. 가족들은 모두 나와서 손님을 맞이해줬고 이슬람 전통 때문에 어머니는 안에 들어가 계셨다. 구광군은 어머니를 볼 수 없었고 오직 나만 볼 수 있었다. 위에 두 딸들은 나를 너무 좋아해줬고-그들은 고등학생들이었다-내가 불편한 게 없도록 너무나 많이 신경을 써줬다.
내 앞머리가 자꾸 내려오자 자신들 핀을 주면서 앞머리에 꼽아주기도 했다. 나는 너무 고마워서 무언가를 주고 싶었는데 사진조차 찍을 수 없는 이슬람 문화 때문에 그 거칠어진 손을 위한 내가 가진 핸드크림조차 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 몰래 내 지갑과 친구의 부탁으로 산 샤넬 립스틱을 줬다. -물론 그들은 샤넬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고등학생이라면 얼마나 외모에 관심이 있겠는가? 이름은 모두 잊어버렸지만 그들의 나에 대한 그 배려는 잊을 수가 없다. 너무 고맙다.
그 NGO와 인연이 아닌지 우린 그 곳을 떠나왔다. 그 곳에선 우리가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샤디의 집을 떠날 때 그 동생들은 너무나 아쉬워했다, 특히 그 여동생들은 너무나 아쉬워하면 더 머물다고 가라고 했다. 이스라엘에서 그쪽에 물을 끊어 한달에 몇 차례만 물이 나온다는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거기에 더 머물며 폐를 끼칠 순 없었다. 그리고 화장실이 날 너무 힘들게 했다. 도대체 그 사람들은 거기서 어떻게 화장실을 사용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난 화장실 때문에 도망쳐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 NGO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지만...
구광군과 난 샤디의 집을 떠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내가 머물고 있는 집을 둘러보았다. 갑자기 화려하단 생각이 든다. 이 집은 우리나라 기준으로 봤을 때 그냥 보통집이지만 샤디의 집과 비교하면 궁전이다. 부족한 거 하나도 없고 추위에 떨지 않고 엉덩이는 따뜻하고 이불은 포근하고 화장실은 깨끗하고 뜨거운 물은 펑펑 나온다. 그리고 노트북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다.
:: 글 - 영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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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미니
2006-05-22 16:38:57
어느 집에를 가나 모두 환영해 주던 사람들...
모두 보고 싶네요 ^^
뎡야
2006-05-22 20:54:17
주걱
2006-05-22 21: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