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증폭시키는 어떤 영화적 장치도 배제한 채, 번쩍 섬광같은 것이 일더니 영화가 끝나고 이내 엔딩 크레딧이 올랐다. 극장 안의 몇 안되는 사람들 모두 숨을 죽이고 약간의 현기증을 느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지만 난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이쁜 것, 사무실에서 전단지와 미니가 바리바리 싸준 무거운 피켓덩이를 낑낑대고 들고온 덩야핑이 거기 있었다. 주섬주섬 나오는 관객들에게, "팔레스타인 평화연댑니다"하고 리플렛을 나눠주니 대학로나 종로에서 예의 그 귀찮은 듯 받아가 쓰레기통에 처박는 서글픈 제스처를 취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 서른명 남짓 영화를 봤을까. 15:30분 영화를 본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영화관은 텅 비었다. 덩야핑이랑 근처 교보 문고에서 출출한 배도 채우고, 넌 소설가 누구 좋아하냐, 나도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는 재밌게 읽었다, 삼국지를 여러 본으로 읽다니 넌 근성이 있구나, 등등의 얘기를 하하호호 재밌게 하다가 6시쯤 씨네큐브로 다시 들어가 극장 입구 옆에 볼록 튀어나온 난간 위에 피켓들을 주루룩 전시해놓았다.
빌딩측에는 전화를 해 놓았지만, 수위 아저씨가 허락은 받은 거냐고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그 아저씨가 전경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기에, 당연히 허락을 받은 거라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 그 시간엔 핑크도 합류했었지.
셋이 포스터 앞에 얼꽝 모드로 사진도 찍고, 극장에서 나눠주는 브로크백 마운틴 필름도 사이좋게 나눠가진 다음, 17:20분 영화를 본 관객들이 서서히 나오더니 역시 예상대로 우리의 피켓 앞에서서 열심히 글씨와 사진들을 읽어주었다.
한번 읽어보세요, 서명 좀 해주세요, 구경하고 가세요...그런 말 한번 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먼저 관심을 갖고 우리는 널럴하게 서서, 피켓 다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리플렛만 나눠줬을 뿐이다. 아~이 얼마나 나른하고도 힘나는 캠페인인가. 하여, 어제는 재밌었단 얘기!
P.S. 물론 일요일팀에 전단지를 나눠주었던 누리,반다,덩야 에게는 점잖게 생긴 중년 부부가 다가와 "너네는...누구냐...인티파다가..대체 뭔지는..알고 그러는 거냐..너희 테러 지지하냐...너네 가방에 폭탄 들었니?"라는 얼토당토한 말들을 지껄여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헤헤
* 뎡야핑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6-04-20 10:22)
이쁜 것, 사무실에서 전단지와 미니가 바리바리 싸준 무거운 피켓덩이를 낑낑대고 들고온 덩야핑이 거기 있었다. 주섬주섬 나오는 관객들에게, "팔레스타인 평화연댑니다"하고 리플렛을 나눠주니 대학로나 종로에서 예의 그 귀찮은 듯 받아가 쓰레기통에 처박는 서글픈 제스처를 취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한 서른명 남짓 영화를 봤을까. 15:30분 영화를 본 사람은 모두 사라지고 영화관은 텅 비었다. 덩야핑이랑 근처 교보 문고에서 출출한 배도 채우고, 넌 소설가 누구 좋아하냐, 나도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는 재밌게 읽었다, 삼국지를 여러 본으로 읽다니 넌 근성이 있구나, 등등의 얘기를 하하호호 재밌게 하다가 6시쯤 씨네큐브로 다시 들어가 극장 입구 옆에 볼록 튀어나온 난간 위에 피켓들을 주루룩 전시해놓았다.
빌딩측에는 전화를 해 놓았지만, 수위 아저씨가 허락은 받은 거냐고 퉁명스럽게 물어보셨다. 그 아저씨가 전경도 아니고 경찰도 아니기에, 당연히 허락을 받은 거라고 상냥하게 대답했다. 아, 그 시간엔 핑크도 합류했었지.
셋이 포스터 앞에 얼꽝 모드로 사진도 찍고, 극장에서 나눠주는 브로크백 마운틴 필름도 사이좋게 나눠가진 다음, 17:20분 영화를 본 관객들이 서서히 나오더니 역시 예상대로 우리의 피켓 앞에서서 열심히 글씨와 사진들을 읽어주었다.
한번 읽어보세요, 서명 좀 해주세요, 구경하고 가세요...그런 말 한번 하지 않았지만 알아서 먼저 관심을 갖고 우리는 널럴하게 서서, 피켓 다 보고 가는 사람들에게 그저 리플렛만 나눠줬을 뿐이다. 아~이 얼마나 나른하고도 힘나는 캠페인인가. 하여, 어제는 재밌었단 얘기!
P.S. 물론 일요일팀에 전단지를 나눠주었던 누리,반다,덩야 에게는 점잖게 생긴 중년 부부가 다가와 "너네는...누구냐...인티파다가..대체 뭔지는..알고 그러는 거냐..너희 테러 지지하냐...너네 가방에 폭탄 들었니?"라는 얼토당토한 말들을 지껄여주셨다는 얘기를 들었지요.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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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댓글
누리
2006-04-18 13:10:05
오늘은 영화 보러갈 사람 없나요?
꼭 영화 안보더라도...
저는 영화는 봤지만 저녁에 시간에 갈 수 있어요
6:50쯤 가면 5:20분 영화보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홍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영화가 바로 이어서 있는 것 같으니까 8:40분 정도 까지 하면 되지 않을까...
다다, 피켓 펼쳐놓으려면 다시 빌딩측에 연락안해도 되겠죠?
다다
2006-04-18 13:18:48
만약 다시 하려면 연락안해도 될 듯. 어제 관계자와 얘기할 땐 걍 어제 하루만 하는 거라고 하긴 했지만, 분위기 보아하니 구구절절 허락맡고 자시고 할 필요 없을 거 같아요.
만약 수위 아저씨나 매표소 언니들이 딴지 걸면, 회원 중 한명이 빌딩측이랑 얘기 끝났다고 하면 되고, 혹시 빌딩측에서 하루만 하는 거 아니었냐고 물어보면, "어? 어제 영화 끝날때까지 하루 한회에 걸쳐서 하기로 했다던데요..."
이렇게 말하면 될 거예요.
nekrozen
2006-04-19 13:5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