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스라엘 법원이 민간인을 조준 사격한 이스라엘 군인에게 최초로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유죄판결을 받는 이스라엘 군인은 와히드 타이시르 병장으로, 그는 2003년 4월 11일 오전 톰 헌달(당시 22세)이라는 영국 출신 ‘국제연대운동(ISM)’ 소속 평화활동가를 조준 사격해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은 매우 다행스런 일이지만, 일부에서 ‘비로소 정의가 살아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 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로 그런지 의문입니다.
타이시르 병장은 헌달을 쏜 후 “통행금지 구역에서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총을 쏘아대는 한 남자를 쐈을 뿐”이고, “그 남자의 머리에서 약 10㎝ 앞을 조준했었다”며 죽일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당국은 영국 정부의 증거나 자료 제공 요구를 거부했고, 검시를 담당했던 검시관의 보고서조차 제공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물론 영국 경찰의 현지조사 요구를 이스라엘이 거부한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나아가 이스라엘은 거짓 증언과 군의 증거 은폐로 ‘과실치사’로 정리하려 했습니다.
그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는 부모의 끈질긴 노력이었습니다. 헌달의 부모는 당시 현장의 사진을 입수해 타이시르의 증언을 뒤집을 결정적인 증거들을 발견했습니다. 입수한 사진에는 헌달이 군인이 아닌 외국인임을 나타내는 밝은 오랜지색 조끼를 입고 있었고, 헌달 뒤로 보이는 낙서들은 통행금지 지역에서 100m가량 떨어진 곳임을 알려 주었다고 합니다. 또 헌달의 아버지는 목격자 13명을 직접 찾아다니며 인터뷰를 했고, 이들의 증언을 모은 50쪽 분량의 보고서를 제출해 결국 이스라엘의 주장을 뒤집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보고서에 나타난 진실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스라엘 접경지역인 라파에서 놀던 한 무리의 어린이들을 향해 총성이 울리더니 한 아이가 쓰러졌습니다. 현지에 있었던 헌달은 반사적으로 아이들 쪽으로 뛰어가 쓰러진 아이를 안전한 곳으로 끌어내고 다른 두 소녀들을 향해 다시 뛰었습니다. 순간 또 한 발의 총성이 울리고 헌달은 비틀거리다 쓰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번 사건에 대해 이스라엘이 스스로 진실을 밝히려 노력 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헌달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헌달이 죽기 한달 전 같은 ‘국제연대운동’ 회원으로 팔레스타인에서 평화활동을 펴던 미국인 레이첼 코리(당시 23세)도 이스라엘 군이 불도저로 깔아뭉개 숨졌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재판도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모니터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000년 9월 인티파다(민중 봉기) 이후 이 같은 조준사격만으로 민간인 1,856명을 살해했으나, 단 한 명의 군인도 재판에 회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나마 헌달의 사건은 당사자가 외국인이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처럼 직접적인 폭력과 억압을 행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실규명이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헌달에 대한 판결은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날아든 총알에 죽어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차원에서라도 조준 사격한 모든 이스라엘 군인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죄가 명백히 입증되면 엄격하게 처벌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조준 사격에 대한 진실규명을 넘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조준 사격 자체를 중단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요즘 들어 다시 위기감이 형성되고 있는 이-팔 사이의 갈등을 제거하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 제58차 화요캠페인도 어김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요즘 들어 참여자가 많지 않습니다. 청계천 공사도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있습니다. 쉽지 않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갖고, 마무리 되어 가는 청계천도 한번 보실겸 시간을 한번쯤 참여해 주실 것을 요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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