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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

  • 날짜
    2012.06.04 14:44:24
  • 작성자
    아미라페트로비치김
  • 조회 수
    1662
  • 주소
    http://pal.or.kr/xe/159869

 

 

 

 

 

 잊혀진 일본 운동권의 이야기

 

 

미국의 베트남 침공으로 촉발된 세계적 반전 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 일본 사회 역시 전공투를 중심으로 하는 학생 운동 진영을 필두로 하여 반전 평화의 목소리로 들끓었다. 그들 중 일부는 급진적 무장 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직접 반식민, 반제국주의 투쟁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노선은 운동내부에서조차 극단적 모험주의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었고 결국 사회와 대중으로부터 유리된 채 좌익 운동의 쇠퇴와 함께 소멸해 갔다.

일본 적군파의 리더였던 시게노부 후사코의 옥중수기 “사과나무 아래서 너를 낳으려 했다”는 투사로서나 이론가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의 시게노부 후사코가 지나간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투쟁의 모습을 담담한 필치로 써 내려간 자서전이다.

 

 

 

왜 그들은 일본 땅이 아닌 아랍을 택했을까

 

 

베트남 전쟁 발발 이후, 급진적 학생 운동 그룹의 주된 화두는 국제적 연대와 소비에트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였다. 당시는 그들이 속해있던 나라들이 소비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제국주의 팽창을 가속화하던 때였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산당을 비롯한 구좌파 그룹이 체제 속에서 안주한 채 사실상 사회 혁명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던 무렵이었다. 기존 좌파들에게 실망한 학생들은 사회 변혁의 동력을 제3세계 민중들의 반식민, 반제국주의 저항과의 연대를 통해 찾고자 했다.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과 베트남 저항 세력에 대한 동조는 이러한 바램의 일환이기도 했다. 서독의 바더 마인호프,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 그리고 일본 적군파와 같은 신좌익 무장 그룹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였다.

그렇다면 시게노부 후사코와 다른 적군파 일원들은 왜 일본 땅을 떠나 팔레스타인으로 갔을까. 이 책에도 간결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그들은 일본 내 계급투쟁을 통한 혁명의 가능성에 대해 굉장히 회의적이었던 것 같다. 그들은 일본 사회가 고소득 소비 사회로 진입하면서 노동자, 시민들이 보수화되어 가던 것과, 좌익 학생 운동이 더욱 주변화 되어 가던 것을 지켜보았다. 어쩌면 ‘68세대’라고 일컬어지는 당시 급진적 학생 그룹의 공통된 정서는 스스로가 밟고 있었던 사회적, 문화적 토양(프랑스, 일본, 서독, 미국 등지에서)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자국의 전쟁과 폭력에 기반한 패권주의 및 물질문명과 기성세대의 안일함에 반발하여 거리로 나온 미국의 청년들이 그러했고, 프랑스 국가의 알제리에 대한 제국주의 지배와 구좌파들의 체제 지향적 태도에 반발하여 거리에서 마오쩌둥을 외쳤던 프랑스의 대학생들이 그러했다. 기존의 일본 제국주의는 그 형태만 바뀐 채, 미국의 패권 질서 하에서 더욱 소비 지향적으로 흘러가던 사회 속에서 혁명의 꿈을 키웠던 신좌익계 학생들도 비슷한 좌절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일본에서는 혁명이 불가능하다!”

 

 

아랍-일본 적군파(Arab-JRA)는 이렇게 해외, 특히 가장 억압받는 제3세계 피지배 민중들이 있는 곳에서 세계 혁명을 위한 근거지를 건설하겠다는 일념으로 탄생했다. 반전, 반제국주의에 기반한 계급투쟁을 통해 진정한 세계 민주주의를 달성한다는 것이 이들의 모토였다. 그들은 레바논 땅을 거점으로 하여 팔레스타인 해방 인민 전선(PFLP, 또는 인민전선)과 연대활동을 벌였다. PFLP는 아랍 땅에서 미국을 위시한 제국주의 세력과 거대 자본 및 지역 지배자들을 몰아냄과 동시에 진보적 유대인들과 아랍의 노동계급이 서로 손잡고 시온주의 국가 이스라엘을 전복시키고 민주주의적 사회주의 나라 팔레스타인을 세운다는 슬로건을 내새웠다. 시게노부 주도의 아랍-일본 적군파가 레바논으로 떠난 후 일본의 잔류 적군파 그룹이 일본 공산당 내 마오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만든 연합적군이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걸었던 반면,(시게노부는 이 사건을 통해 혁명과 학생 운동 시절 품었던 이상에 대한 환멸을 느꼈다고 기술하고 있다) 아랍-일본 적군파가 계속되는 위협의 노출 속에서도 강한 결속력을 유지했던 것은 어쩌면 그들이 끝까지 ‘아래로부터’와 피지배 민중과의 연대라는 좌파적 원칙을 계속 고수하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벌였던 무장 공격은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대의에 커다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단기적인 차원에서 점령당한 팔레스타인 해방 투쟁을 세계에 알리는 데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모험주의적 무장 투쟁은 국제적 팔레스타인 해방 운동에 대한지지 여론을 약화시켰을 뿐 아니라 도덕적 차원에서의 비판도 면할 수 없었다. 수십년이 지난 후의 시게노부도 이를 다음의 글 속에서 뼈아프게 인정하고 있다.

 

“지금 우리들이 70년대 식의 무장 투쟁을 중지한 것은 UN에서 팔레스타인의 인정이라는 시대적 흐름도 있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통해서 보여진 생명의 소중함을 모든 투쟁에서 살리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와 나는 과거의 투쟁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고 고통을 주기도 하고, 목숨까지 잃게 한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며 그 피해자에게 깊게 머리 사죄한다.”

(책 본문 82~83페이지)

 

한편으로, 아랍-일본 적군의 투쟁은 피지배 민중들의 실생활로부터 출발하는 투쟁이었다기 보다는, 급진적 소수(지식인, 학생)를 필두로 하는 조직 중심의 모험적 무장 투쟁이었기에 이들은 러시아 나로드니끼(인민주의자)들과도 상당히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어쩌면 이들의 한계와 비극은 이 지점에서부터 예고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게릴라 전사와 어머니의 길 사이에서

 

 

하지만 수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세계 혁명의 이상도 무뎌졌지만, 시게노부는 적군파 활동의 거점이었던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땅과 그곳에서 만난 이들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는 그 방식은 비록 매우 잘못되었지만, 그 자신과 동지들이 가졌던 팔레스타인 해방에 대한 신념만큼은 매우 소중했던 것이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또 스스로가 여성의 입장에서 가부장적 억압 속에서도 조용히 투쟁하고 있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여성들을 애정 어린 시각으로 서술함으로서 독자들로 하여금 계몽자나 시혜적인 입장을 탈피하게끔 도와주고 있다.

시게노부 후사코는 아랍 땅에서 태어난 자신의 딸 메이가 일본 국적을 취득하여 포탄과 공포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 자수하고 감옥 속에서 진정서를 썼다. 이 자서전은 진정서와 어머니로서 딸 메이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초로 한 것이다. 모성을 가진 어머니와 게릴라 전사, 두 가지 길에서 이 여전사는 전자의 길을 택했다. 어쩌면 젊은 시절 그가 억압받는 이에 대해 공감하고 혁명의 이상을 품게 만들었던 그 휴머니즘적 감성이 메이의 어머니 후사코를 통해 발현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혁명 투사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시게노부 후사코가 걸어온 여정 속에는 60~70년대 젊은이들이 품었던 이상과 상처 그리고 환멸이 집약되어 있다. 그 모든 것을 한 몸에 경험한 시게노부가 이 책을 통해 오늘날의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화두는 너무나 뜻깊다.

 

 

“어린 너를 남겨두고 어딘가로 떠나야 할 때면, 눈물짓고 서 있는 너의 손을 부여잡고 어미가 고작 해야 했던 말들, 기억하니? 그리곤 얼마 후 다시 네게로 돌아와서 밤하늘의 달을 같이 보았지. 지난 번 면회 온 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이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어서 한동안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흐르는 별에 싸여서 떠 있는 오리온 좌의 아름다운 밤하늘을 너와 함께 바라보고 싶었단다. 지중해가 바라다 보이는 아랍의 땅에는 이곳 일본에서는 생각지도 못하는 아름다운 밤들이 많았다......(중략)

너에게는 고생만 시켰어. 그것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를, 난 감히 말하고 설명할 자신이 없단다. 어느 날 문득 어린 널 부여잡고 흐느끼며 막막한 심정을 얘기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아무 연락도 없이 너에게 기다림만을 안겨준, 돌아오지 않는 엄마였었지. 사랑스런 내 딸과 함께 놀아주고, 옷도 만들어 주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지. 나는 오늘 서명한 출생 신고서를 일본 관청에 제출했다. 정식으로 호적 정리를 거쳐 네가 당당한 나의 딸로서, 다시 한번 내 앞에 나타날 날을 손꼽아 기다릴 거다.”

(본문 1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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