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스라엘 키부츠에서 몇 달 지낸 적이 있다. 나는 단순히 이스라엘이 존재할 권리만이 아니라, 평화와 안보 속에 존재할 권리를 전면적으로 지지한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인 버니 샌더스가 한 말인데요. 내년에 미국 대선이 있을 예정이죠.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 5명이 10월 28일에 미국의 주요 유대 로비 단체 ‘J Street’의 연례 총회에 참석했는데, 거기서 한 발언입니다.

미국은 로비 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고, 특히 막대한 자금을 가진 영향력 있는 유대 로비 단체들이 많죠. 그래서 대선 후보들이 꼬박꼬박 총회 등 행사에 방문하고요. 버니 샌더스가 갔다는 J Street은 걔중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단체입니다. 제이 스트릿은 미국의 이스라엘 원조가 계속 되게 지원하는 단체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두 개 국가가 양립하는 기존의 ‘두 국가 안’이 이스라엘의 평화와 안보를 위해 중요하다는 입장이에요. 버니 샌더스도 같은 입장이고요.

그 때문에 미국의 다른 우익 유대 단체나, 지금 이스라엘에서 대놓고 인종주의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예루살렘은 물론 서안지구까지 불법 병합하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우익 정치인들을 거세게 비판하죠.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가자지구에 대한 13년간의 육해공 봉쇄와 시위대 살인도 비난하고요. 저 키부츠에서의 경험을 얘기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매년 4조 5천 억원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원조를 계속 받고 싶다면, 가자지구 주민들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것이며, 실은 그 원조금 중 일부는 인도주의적 원조를 위해 (가자지구로) 바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어요. 이스라엘의 군사점령 비판이 반-유대주의일 수 없다고도 말하고요. 대부분의 이스라엘 비판은 대충 저희가 크게 반론할 만한 건 없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제이 스트릿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진보적 유대인들과 역시 진보적 정치가인 버니 샌더스의 입장에는 팔레스타인 민중들, 당사자들의 자리가 없습니다.

첫째, ‘두 국가 안’에 대한 입장입니다. 전에 글을 한 편 쓰기도 했는데요.(‘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선택인가) 아마 팔레스타인이 지금처럼 국가가 없이 이스라엘에 군사점령 당한 상태가 아니라, 국가가 되어 점령상태를 벗어나면 팔레스타인에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 세계 질서를 이끄는 미국의 입장은 거의 팔레스타인을 영구 점령 상태로 두는 건데요, 그거에 비하면 좋게 들리긴 하죠. 그런데 ‘두 국가안’이란 애초 팔레스타인이라는 땅을 유엔이 둘로 갈라서 더 큰 쪽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세우고, 더 작은 쪽에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를 세우라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당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거고요. 그런데 팔레스타인 사람들 입장은 온데간데 없고, 기왕 이스라엘은 국가를 세웠으니 존재할 권리가 있어, 인정해, 라고 강요하는 것만 남은 거에요.

어쨌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를 인정한다고 칩시다. 애초 유엔이 할당한 땅보다도 훨씬 줄어든 땅에 팔레스타인이라는 국가를 만든다고 쳐요. 그러면 난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1948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후 해서, 그리고 1967년 팔레스타인을 군사점령하면서 만들어낸 수십만-지금은 수백만이 된 난민들은 어떻게 하느냐? 이게 되게 웃긴데요. 아시죠,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은 예루살렘의 지위나 서안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 문제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문제라는 거. 2국가 안 지지자들은 아 지금 점령지 팔레스타인 땅에 사는 난민들은 난민촌이라는 임시적인 공간에 살지 말고 그 마을을 영구적으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서 거기 살면 되지 않냐, 팔레스타인 사람인데. 그렇게 하면 난민이 아니라는 거에요. 그리고 해외에 있는 난민들은 돌아오겠다고 하면 미래에 세워진 팔레스타인 국가로 가면 되고, 안 돌아오겠다고 하면 재산을 보상해 주자. 이렇게 얘기해요. 무슨 얘기냐면 부산에 살던 사람 서울에 살게 하고 대전에 살던 사람 횡성에 살게 한다는 거에요. 난민들은 자기가 살던 고향 부산에, 대전에 가고 싶다고 얘기하는데, 자기네 맘대로 팔레스타인이면 됐지, 그러는 거에요. 이미 이스라엘이 전쟁으로 차지한 땅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그래서 현대 이스라엘에 자기 고향이 있는 난민들이 훨씬 많은데,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거죠. 그러고는 “상징적”인 숫자는 이스라엘로 받아주겠대요. 대충 얼마일까요? 이스라엘 정치인이 5천 명 정도 제안한 적이 있어요. 수 백만 명 중에 5천 명이요. 분명히 해 두지만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인종 청소, 학살과 추방의 생존자들입니다. 당사자들의 입장이 어떻게 하면 중요하지 않을 수가 있죠?

그리고 두 국가 안은 군사점령 사실을 제대로 인지를 못 해요. 그게 진짜 이상한데요. 분명 말로는 군사점령이 큰 문제라고 해요. 구체적으로 지적해요 위에 말했듯이. 그런데 점령자와 피점령자 사이 정치적인 힘의 우위가 명확하다는 걸 인지를 못 해요. 미국이라는 형님이 중재하면 둘이 힘이 대등한 상태로 협상할 수 있다고 믿어요. 양측을 존중하고 동등하게 대해서 협상 테이블에서 얘기하쟤요. 이게 뭐 상상해 보면 될 수도 있겠는데? 싶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게, 이게 상상 차원이 아니고 이미 수없이 많이 그 협상이란 걸 반복해서 다 망한 끝에 오늘날의 모습이 된 거거든요. 그런데 그냥 아무 근거도 없이, 양측이 대등하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해 더욱 힘의 우위가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차이가 나게 됐는데도 협상하면 된다고 해요. 이게 말이 되냐고요.

그래서 여담이지만 유대국가나 팔레스타인 국가가 아니라, 하나의 민주 국가를 만들어서 유대인 아랍인 상관 없이 평등하게, 평화롭게 살자는 입장, 즉 1국가 입장이 계속 힘을 얻고 있어요.

둘째로 버니 샌더스는 BDS 운동을 반대합니다. 왜냐? BDS를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이라고 보거든요. 아, 물론 버니 샌더스는 BDS에 반대하는 많은 진보 인사 중 한 명이지만 BDS를 불법화하는 건 표현의 자유 침해라고, 불법화에 반대한다고 밝혔어요. 미국 26개 주에서 BDS를 불법화했는데, 자기는 반대하지만 표현의 자유로 그 운동은 보호돼야 한다니, 이 정도면 정말 상식적인 정치가죠.

하지만 BDS 운동은 내가 찬성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에요. 군사점령 하에 살면서, 점령을 끝내게 하려고 수많은 해방 운동을 해온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국제사회에 호소하는 거에요. 온갖 방법을 다 했는데 이스라엘 군사점령과 식민화가 더 심해질 뿐이다, 이스라엘을 멈추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이다, 우리의 외침에 연대해 달라. 정말 팔레스타인에서 다양한 해방 운동을 지금도 하고 있는데, 근데 그 다양한 세력이 전부 다 들어있는 시민사회 그 자체의 절박한 요청이에요. 그런데 여기다 대고 반대한다고 명확히 말하는 건, 좋게 생각해도 너희의 해방은 정치가들이 아까 말한 2국가 안으로 해결할 문제고,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밖에 안 되는 거에요.

버니 샌더스가 유대인이라서 한계가 있는 걸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미 BDS 지지하는 유대인 많잖아요(미코 펠레드의 글).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가 취할 수 있는 최대치가 여기까진 것 같습니다. 오바마 때도 이스라엘한테 불법 유대인 정착촌 더 짓지 말라고 수없이 경고하고, 이스라엘더러 협상 테이블에 나오라고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안 됐어요. 뭔가 완전 같지야 않겠지만 주요한 차이점은 잘 모르겠어요. 트럼프의 미국이랑은 확실히 다르겠지만요.

얄라 팔레스타인 시즌 1.5, 1화 스크립트용으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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