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서]

수신: 제 단체, 문화ㆍ영화계를 포함한 개인들

발신: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제목: 금번 EBS 국제다큐영화제에 이스라엘 영화 상영, 행사 등 중단을 요청하는 행동에 함께 해 주십시오.

제 11회 EBS 국제다큐영화제(EIDF, 이하 영화제)가 “다큐, 희망을 말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8월 25일부터 31일까지 열립니다. 영화제는 이스라엘 다큐멘터리에 촛점을 맞춰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컬렉션’ 섹션과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 텔아비브영화제 예술감독 초청 강연 등 행사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이번 영화제의 주요 후원자 중 하나이며, ‘이스라엘 다큐멘터리 컨퍼런스’의 공동주최자이기도 합니다.

연일 뉴스에 나오는 바와 같이 지난 7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한 뒤 약 한달 간 18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해당했고, 1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이 숫자는 침공이 진행 중인 지금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2007년 가자지구의 육·해·공을 봉쇄한 뒤 대대적으로 가자지구를 침공하고 대량학살을 저지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와 같은 주기적 침공과 대량학살, 가자 봉쇄, 나아가 점령을 끝내고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세계 시민사회에 이스라엘을 제재(BDS: 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에도 삶이 있습니다. 웃고, 외식을 하고, 학점을 고민하고,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그 일상에는 ‘당연함’이 빠져 있습니다. 그저 좋아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예술을 즐길 기회 없이, 예술이 온갖 문화제와 치유프로그램, 극복이나 저항의 수단일 수밖에 없던 삶을 산 팔레스타인 젊은 예술가들은 예술의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려는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자유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문제가 있고, 우리 사회에 있는 것 같은 경험과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가면 그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매력적이거나 익숙한 문화. 길에서 아무렇게나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 동네에서 자율적으로 열리는 벼룩시장, 출근 시간 간단한 요기거리를 들고 바삐 거리를 걷는 분주함. 우리는 아마 팔레스타인을 방문했을 때보다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정서적으로 더 공감하거나 익숙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가치와 정서를 의식적으로 이용합니다. 이스라엘은 각종 학술, 문화 행사를 유치하고 참여하며 이스라엘을 점령자나 학살자가 아니라, 일반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체계적으로 국가 브랜드를 세탁해 왔습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내의 학술, 문화 행사는 조직적으로 방해, 금지해 왔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이스라엘의 삶에는, 그들이 가하는 점령의 폭력 때문에 스스로조차 뒤틀려가는 팔레스타인의 생명이 가려져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뺏은 것은 팔레스타인의 땅과 삶, 곧 문화입니다.

2008년 전 세계가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축하하고 기념할 때, 한쪽에서는 세계적인 문화 인사들이 이렇게 외쳤습니다. ‘기념할 이유가 없다No Reason to Celebrate!’ 이 외침에는 ‘여전히still’이라는 말이 나오고 또 나옵니다.

기념할 이유가 없다! 60년이 된 이스라엘은 여전히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단지 ‘비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엔이 인정한 귀환권을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수많은 유엔결의안을 어기면서 불법적으로 팔레스타인과 기타 아랍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의 후한 경제적, 외교적, 정치적 지원을 받으며 끊임없이 막무가내로 국제법을 어기고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

점령이라는 틀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면, 삶의 당연한 기본으로서 ‘문화’에 대한 권리를 주장한다는 그 문장 자체는 타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해자가 ‘이제’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누리겠다고 주장할 때, 피해자는 ‘여전히’ 온 삶과 온몸으로 그 가해자가 만들어내는 매일의 점령을 현실로 겪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구도 자체를 문제 삼지 않고서 그 ‘당연한’ 문화를 이야기 하는 것은, 의도치 않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여전히 가하고 있는 점령과 인종청소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현실 구조에 동감한 많은 예술가들과 학자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학술적, 문화적 보이콧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애와 미를 얘기하는 그들의 말과 삶의 연장선이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영화제에 대해 다음의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첫째, 주한이스라엘대사관이 이번 영화제의 공식 후원처라는 점. 둘째, 이번 영화제의 이스라엘 컬렉션에 나온 영화들이 현재의 점령 현실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 셋째, 이 모든 것에 앞서, 이런 행사 자체가 점령을 정상화/일반화한다는 점입니다. 덧붙여 본 영화제는 특히 사실을 통해 진실을 담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이므로, 영화제가 최소한 자기성찰적 시선으로 민간인 학살이 계속되는 국면에서 이스라엘 대사관과 공조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팔레스타인평화연대는 영화제 측이 이스라엘 관련 모든 프로그램을 전면중단하고 이스라엘 대사관과의 협력관계를 중단할 것을 요구할 예정입니다.

(현재 저희가 진행 중인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영화제 측에 질의서 발송 완료, 시민사회단체와 공동 성명서 발표 예정, 팔레스타인 영화감독들 성명서 조직, 개막식에 맞춘 항의집회 예정, 팔레스타인 영화 맞상영회 준비 등 거의 매일 새로운 액션에 대한 아이디어와 준비를 진행 중입니다.)

이번 EBS 다큐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는 “다큐, 희망을 말하다Hope Lies Within US”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연대하고, 함께 희망을 얘기하고자 하는 여러 단체, 개인들께서 함께 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 구체적 행동 제안

이번 EBS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EIDF)에 대해 각자가 서 있는 입장에서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행동하는 연대를 제안합니다. 각자의 가치에 따라 보이콧의 대상과 수위가 모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동의되고 행동 할수 있는 만큼의 입장을 표명하고 행동해 주십시오.

  1. 영화·문화 관련 단체나 개인들의 성명 발표, 항의 서한 전달, 기자회견 주최 등
  2. 영화제 현장 항의 행동과 집회 – 개막식, 이스라엘 다큐 컨퍼런스, 이스라엘 영화 상영관 등에서
  3. 영화제 홈페이지나 블로그, 페이스북 또는 개인 SNS를 통한 항의 의견 남기기
  4. 팔레스타인 다큐멘터리 상영회 개최
  5. 학술문화 보이콧에 대한 토론회, 기고 등 담론화
  6. EBS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에 대한 보이콧
  7. 한국 정부, 무기수출, 소다스트림 등 이스라엘 제품 불매운동, 팔레스타인 가옥 파괴에 사용되는 현대중공업에 대한 보이콧 등

* 참조: 이스라엘 컬렉션에 출품되는 영화 목록

  1. 슈퍼마켓의 여인들Super Women(2013, 감독 Yael Kipper Zaretzky, Ronen Zaretsky-이스라엘로 이주해온 러시아 여성들의 노동자로서의 삶과 현실.)
  2. 루디의 마지막 유산Life in Stills(2011, 감독 Tamar Tal-남편의 유산인 사진관이 철거될 위기에 처했을 때 96살 노부인과 손자 사이에 일어나는 이야기.)
  3. 히틀러의 아이들Hitler’s Children(2011, 감독 Chanoch Zeevi-나찌 경력의 가족을 둔 다음 세대들이 던지는 질문들.)

* 문화적 보이콧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사례들은 이 파일을 참조해 주세요:EBS 국제다큐영화제 – 문화적 보이콧 (상세)